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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칼럼]입법 흥정 않는 게 ‘행동하는 새정치’다

입력 | 2014-04-01 21:06:00

국회가 발목 걸면 대통령은 無力
규제개혁 民官토론 아무리 해도
민생 위한 입법 안 해주면 속수무책

국회 소수파가 제왕적 존재로 군림
이를 가능케 한 악법이 선진화법

‘안철수 새정치’ 진정성 보이려면
입법 끼워팔기 흥정부터 거부해야




배인준 주필

3월 마지막 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를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해 59%는 긍정평가를 했고 28%는 부정평가를 했다. 긍정평가의 이유 중에는 외교·국제관계 및 대북·안보정책에 대한 신뢰와 지지가 두드러진다. 만약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경제·일자리 정책처럼 일일이 국회의 입법을 기다려야 했다면 박 대통령 외교리더십도 빛을 잃지 않았을까.

‘대통령이 잘한다’는 평가가 높으면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잘하는 것만으로 경제가 좋아지고 일자리가 늘어나며 더 많은 국민이 행복을 느끼지는 않는다. 국회가 필요한 법을 제때 통과시켜 주지 않으면 규제개혁 토론을 7시간이 아니라 7일간 계속한다 해도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될 뿐이다. 국회 소수파의 입법 방해가 법으로 보장되다 보니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제왕적 국회 소수파’라는 말이 현실에 더 부합한다.

이른바 국회선진화법(개정 국회법)이 소수파의 입법 방해를 제도화한 바로 그 악법이다. 의결 정족수를 재적의원의 5분의 3으로 높였기 때문에 의석의 40%만 차지하면 거의 모든 법안의 본회의 상정도, 통과도 막을 수 있다. 이 법 아래에서 ‘국회는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헌법 49조가 무력화(無力化)되었다. 헌법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전당에서 과반수가 다수의 의미를 상실한 것이다.

50%의 지지를 얻은 법안보다는 60%의 지지를 얻는 법안이 합의를 10%포인트 높이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을 빼고 계산한다면 더 민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입법의 실상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국회선진화법은 오히려 그 반대로 작동한다. 40%의 지지밖에 얻지 못하는 법안이 이른바 ‘법안 연계 처리’라는 ‘입법 흥정’에 의해 통과되는 반(反)민주적 결과가 나타난다. 국회 다수파는 자신들이 시급하다고 보는 법안의 성립을 위해 ‘독배를 들듯이’ 소수파 법안도 처리해줄 소지가 커진다. 이는 다수가 소수에 굴복하는 것이고, 선거민주주의를 실현한 민의(民意)에 반하는 것이다.

국회 소수파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최근에 시도한 입법 흥정은 원자력방호방재법(핵방호법) 개정과 방송법 개정을 맞바꾸려 한 것이다. 핵범죄 범위 확대 등의 내용을 담은 핵방호법 개정안은 국회 의석 52.3%를 차지한 새누리당의 지지를 얻고 있으므로 최소한 과반수는 충족시켰다. 새정치민주연합도 개정안에 이견이 없기 때문에 최대로는 100%에 가까운 지지를 얻은 법안이다. 그런데도 핵방호법은 방송법이라는 전혀 다른 법안에 묶여 통과되지 못했다. 이것이 소수파의 입법 방해이다. 반면에 새정치민주연합이 통과를 원하지만 ‘노사동수(勞使同數) 편성위원회 조항’ 등 위헌 시비가 있는 방송법 개정안은 최대로 얻는 지지라고 해봐야 새정치민주연합 의석 43.6%가 고작이다. 찬성이 과반 미달인 법안을 국민기만적 입법 흥정에 의해 통과시킨다면, 이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외치는 ‘민주주의 회복’과 거리가 멀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 측이 합당 작업을 하는 와중에 이런 입법 흥정극을 벌였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여당이 자신들을 ‘새민련’이라고 줄여 부르는 데 대해 발끈하고 있다. 안 의원의 새정치와 민주당의 60년 전통을 다 살린다면 새민련이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새정치민주연합 측이 반발하는 것은 새정치를 강조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처럼 새정치를 어필하고 싶다면 새정치를 실행하는 것이 정도(正道)이자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새정치민주연합의 안 대표가 ‘핵방호법과 방송법의 연계 처리는 새정치 정신에 맞지 않는다. 국가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입법 자세를 솔선하자’며 핵방호법의 적시(適時) 처리를 위한 리더십을 발휘했더라면 적지 않은 국민이 ‘아, 저게 새정치이구나’라고 실감하지 않았을까. 새정치민주연합의 안 대표는 그런 점에서 자신이 표방한 새정치의 진정성을 입증할 기회이자 지도자 자질을 보여줄 기회를 하나 놓쳤다.

정치를 좀 안다는 사람들은 ‘말이 곧 정치’라고 하지만 나는 아직도 ‘행동이 정치’라고 생각한다. 만약 정치가 말로만 되는 것이라면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율이 30% 안팎에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국회 안에서 해야 할 새정치는 많다. 낡은 입법 악습을 하나하나 벗겨내는 일로부터 새정치를 시작해 보라고 새정치민주연합 구성원들에게 권하고 싶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