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북한과 일본의 정부 대표가 자주 만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북-일 교섭의 궁극적 목표는 국교정상화다. 북한과 일본 사이엔 현재 국교수립이 안 돼 있다. 1965년 한국과 일본이 한일협정을 통해 일본의 한국 강점을 법적으로 청산한 것에 비해, 북한과는 그마저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내년이면 일본이 패전하고 한반도가 광복된 지 70년이 되는 데도 말이다.
그렇지만 국교정상화는 아직도 먼 얘기이고, 일본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본이 면밀한 조사를 통해 북한에 납치됐다고 인정한 일본인은 17명이다(2002년 15명, 2005년과 2006명 각 1명 추가). 이에 대해 북한은 2002년 9월 평양을 방문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에게 밝힌 13명이 전부라고 맞서고 있다. 당시 북한은 일본 측에 유감을 표명했지만, 일본은 북한의 발표를 신뢰하지 않는다.
일본인 납치 문제의 상징적인 존재가 요코다 메구미라는 인물이다. 1977년 11월 니가타현에서 납치됐을 때 그녀는 13세였다. 북한은 메구미가 1994년 4월 딸을 낳은 뒤 우울증으로 자살했다고 주장하고, 2004년 그녀의 유골이라는 것을 일본에 전달했다. 그러나 감정결과 가짜임이 드러나 일본사회는 분개하며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1997년에 결성된 '납치피해자 가족연락회'의 중심인물도 메구미의 부모 요코다 시게루 씨(81)와 요코다 사키에 씨(78)다. 두 사람은 지난달 중순 외손녀인 '김혜경(26·김은경의 가명?)'을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만나 또다시 뉴스의 초점이 됐다. '김혜경'의 아버지는 한국인 납북자 김영남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인 납치 문제가 일본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는 한국의 위안부 문제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납치피해자 가족들의 주장에 반신반의하던 일본 사회도 2002년 김정일이 납치사실을 전격적으로 인정하면서 일본 정계와 사회의 최대현안으로 떠올랐다. 현재는 정치인과 언론은 물론이고, 사회 구성원 누구든 이 문제를 제쳐두고 북한과 국교정상화를 하자고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피해자 가족연락회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로 보면 된다. 한국의 일각에서 일본이 자국민의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그렇게 노력하면서, 같은 인권문제인 위안부 문제는 외면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도 두 사안의 유사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1일 중국 베이징에서 일본 정부대표와 만난 뒤 북한으로 돌아가기 위해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나타난 송일호 북-일국교정상화 협상 담당대사의 말이 관심을 끌었다. 2일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그는 3월 30일 일본에서 강제 매각 판결이 내려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회관 문제와 관련해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이 없으면 조-일(북-일) 관계 진전 자체가 필요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북한 대표가 이 정도로 강하게 얘기한 것을 보면 협상 테이블에서도 북한 측은 총련 회관 문제를 꺼냈을 것이고, 이에 대해 일본은 '국내법'을 앞세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교정상화와 납치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북한이 총련 회관 문제를 꺼낸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적어도 두 가지 추정이 가능하다.
첫 번째는 해결이 안 될 것을 알면서도 협상카드로 내세웠을 가능성이다. 전형적인 북한식 수법이다. 무리한 요구를 해서, 안 되면 그만이고, 다른 양보를 얻어내면 이득이라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일관되게 납치문제는 이미 해결됐다고 주장해온 북한이 끈질기게 납치문제를 꺼내는 일본의 공세를 약화시키기 위한 노림수의 성격도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실제로 총련을 돕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지금 총련의 힘은 많이 빠졌지만 그래도 총련은 북한에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운 기관이다.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절대적 충성심을 바탕으로 때마다 거금을 갹출해 보내고, 일본 내에서 철저하게 북한의 이익을 대변했으며, 민족학교와 민족교육을 통해 북한을 추종하는 2세, 3세들을 길러냈고, 한국과의 이념대결시기에는 한국으로 밀입국시키는 반정부주의자나 간첩들의 전진기지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게 된 것은 1990년대부터다. 총련이 만들었고, 총련의 돈줄 역할을 하던 '조긴(朝銀)'들의 각종 부정이 드러나고, 여기에 일본 국민이 낸 세금이 조 단위로 들어가면서 비판이 거세졌고, 성역은 무너졌다. 한때 50만 명이나 되던 총련 지지자들도 최근에는 4만여 명으로 급감했다.
한때 모든 것을 바쳐 북한에 충성을 다했던 총련이 곤경에 빠졌지만 북한이 해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총련 간부로 있다가 탈퇴해 총련을 비판하는 책을 낸 한광희라는 사람은 북한과 총련의 관계를 "추녀가 일방적으로 짝사랑했다가 몸과 마음이 갈가리 찢겨진 뒤에 쓸모가 없어져 버림받은 것과 같다"고 했다.
일본의 입장은 어떨까. 일본은 더이상 총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총련의 상징이었던 총련회관 건물 매각뿐 아니라 요즘은 총련이 운영하는 각급 조선학교 용지를 압류하거나, 고교교육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일본은 '법의 지배'를 상당히 존중하는 사회이기도 하다. 실정법을 어긴 것이 드러난 이상, 더욱이 빚을 갚지 못해 건물이 매각될 처지에 놓인 것까지 구제해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 듯하다. 북한이 핵문제나 납치문제에 고분고분하게 국제사회의 요구를 수용할 것 같지도 않은데 북한에 호의를 베풀 여지가 있겠는가.
그렇지만, 북한은 성과가 있든 없든 계속해서 이 문제를 물고 늘어질 가능성이 크다. 협상카드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일본에 있는 총련계 사람들을 다독이기 위한 쇼의 성격도 있다. 총련을 위해 나름 노력하고 있다는 '립서비스'라도 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총련의 유감 표명에 총련 조직원들의 상당수가 배신감과 허탈감을 느꼈다고 한다. 범죄를 저지른 북한도 북한이지만, 이를 알고도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는 총련의 행태에 더 큰 분노를 느꼈다는 것이다. 그 이후 총련 탈퇴 러시가 일어났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이 총련 회관을 살려내라고 일본 측에 아우성이지만, 총련의 힘이 빠지게 된 결정적 원인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책임은 북한에 있다. 그러고도 이제 와서 목소리를 높이는 건, 그야말로 병 주고 약 주고다. 그러나 북한이 그런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다는 게 총련의 비극이다.
심규선대기자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