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그런데 많은 경우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에 비해 너무 큰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게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에게 성적으로 불편한 농담을 하는 당사자들은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뱉은 말이 타인 입장에서 어떤 식으로 느껴질지에 대한 인식과 감수성이 없는 것이다.
감수성 문제는 근대 이후 등장한 가치인 평등 개념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다. 우리가 ‘평등’을 전제할 때 주의할 것은 차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 평등’도 마찬가지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대학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학은 사회의 각종 불평등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면서 사회의 편견을 되풀이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학 시절에 성 평등 교육을 제대로 받고 감수성의 ‘근육’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남학생과 여학생 모두에게 긴요한 일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특히 남녀공학을 다니는 여학생들일수록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여자 선배가 아닌 남자 선배들로부터 배운다고 한다. 일부 감수성 없는 교수들은 여학생들의 자의식에 상처를 주는 말을 무감각하게 내뱉는데 그런 경험에서 여학생들은 자신들이 제자 군(群)에서 소외되고 있음을 직간접으로 느낀다. 여학생들 중에는 대학원에 올라갈 때쯤 되면 이런 감정노동에 이력이 나게 되고 자존감이 땅에 떨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성 평등 교육은 학교 커리큘럼을 통해 배울 수도 있는 것이지만 캠퍼스 내에서 성 평등 의식과 문화가 확산됨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 자기와 반대의 성(性), 내가 아닌 타인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관용을 실천하려는 섬세한 배려와 예민한 알아차림을 훈련할 기회가 필요하다. 최신 교육학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인식은 고정적이지 않고 상황적이라고 한다. 정의롭고 공정하게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함으로써 정의로운 성 평등 감수성이 높은 지식인이 탄생하는 것이다. 반면에 성 평등에 무감각한 문화 속에서 자란 학생은 이후 다양한 형태로 다가올 각종 갈등 상황을 효율적으로 대처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 다양성을 포용할 줄 아는 균형감을 갖춘 고차원적 의식에 기반한 판단을 내릴 가능성도 떨어진다.
지난 학기말에 학부 대학생 여럿과 저녁을 먹으러 갔다. 태국음식점이었는데 몇 가지 요리를 시켜서 나누어 먹었다. 여섯 명 중 두 명의 남학생은 다른 사람 접시에 음식을 덜어주거나 옆의 사람에게 접시를 패스해주는 수고(?)를 맡지 않았다. 반면 여학생들은 조용히 그리고 수동적으로 자신보다 어린 남학생들 즉 후배들이 먼저 덜어 먹을 때까지 기다렸으며, 어머니의 몸짓으로 음식을 덜어주기도 했다. 여학생들의 행동도 놀라웠지만, 남학생들의 무감각함도 놀라웠다. 무의식적인 남녀 위계가 발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일상에서 이런 일은 얼마든지 있다. 문에 들어갈 때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도록 잡아주기는커녕 어른과 여성들을 밀치고 들어가는 남학생도 많이 보았다. 이런 행동들은 남성들의 삶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만약 그들이 취업 인터뷰를 하러 갔을 때 마침 그 회사 상사가 여성이었다면―아니 남성이라 하더라도―이런 상황을 목격했을 때 과연 이 젊은이를 채용할 것인가?
조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