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 워싱턴 특파원
지금 워싱턴에서는 벚꽃 축제가 한창 열리고 있다. 워싱턴은 매년 관광 수입의 35%를 벚꽃 축제 기간에 거둬들일 정도로 전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든다. TV에서는 미일관계 역사를 재조명하는 특별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벚꽃 퍼레이드, 연날리기 대회, 사케 시음, 사쿠라마쓰리 일본거리 축제 등 일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행사가 줄을 잇는다.
워싱턴 특파원으로 봄마다 벚꽃을 보며 눈이 호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워싱턴의 벚꽃은 1912년 3월 양국 우호의 상징으로 오자키 유키오(尾崎行雄) 당시 도쿄 시장이 선물한 벚나무 묘목 3000여 그루가 시초였다. 당시 벚꽃을 미국에 들여올 때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의 조선 지배를 인정해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의 부인 헬렌 여사가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벚꽃 축제와 쌍벽을 이루는 일본 소프트외교의 현장은 최근 워싱턴에서 부쩍 늘어난 일본 관련 세미나들이다. 최근 한 달 사이에만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스팀슨센터 등 5, 6곳에서 일본 외교안보 전략을 토론하는 행사가 열렸다.
지난달 말에는 미일협회(USJC) 주최로 워싱턴의 한 호텔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여성 인재 활용 정책인 우머노믹스를 토론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정하는 아베 정부가 미국에 원정단까지 보내 자국의 여성 정책을 홍보하는 세미나를 연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학술 교류 주제가 외교안보에 그치지 않고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여성 환경 인권 등의 이슈로 확대되고 있는 것은 일본의 소프트외교가 얼마나 치밀하게 진행되는지 보여준다.
일본은 지난해 11월 주미 일본대사관에서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대사 부임 축하연을 성대하게 열어줬다. 이 자리에서 일본 시를 낭독하고 다다미방에서 함께 차를 마시는 전통 행사를 마련해 케네디 대사는 물론이고 동석했던 존 케리 국무장관도 “일본 문화 멋있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은 최근 버지니아 주 교과서 동해 병기, 글렌데일 소녀상 건립 등에서 잇달아 좋은 결실을 거뒀지만 엄격히 말해 이는 재미 한인사회 노력의 결과다. 한국 정부 차원의 대미(對美) 소프트외교는 아직 일본에 한참 뒤지고 체계적이지도 않다. 오늘 워싱턴의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는 마음은 그래서 복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