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생후 3개월 만에 미국과 프랑스로 따로 입양돼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자란 한국계 쌍둥이 자매가 인터넷을 통해 25년 만에 재회한 사실이 화제다. 프랑스와 미국이라는 공간을 넘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서 자신과 똑같은 사람을 발견하고 만나 유전자(DNA) 검사까지 해보니 같은 혈육, 즉 일란성 쌍둥이였다는 이야기.
놀랍게도 미국으로 입양된 언니는 영화배우가, 프랑스로 입양된 동생은 패션디자이너가 되어 서로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태어나 잠시 같이 살다가 이후 서로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서, 완전히 다른 언어를 익히며, 다른 교육을 받고 자란 쌍둥이들이 비슷한 일을 하고 비슷하게 살아왔던 것을 보면 거창하게 ‘운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는 ‘기질’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하는 것 같다.
우리 부부는 첫딸을 얻었을 때만 해도 조기교육이 아이 평생을 좌우한다고 믿었던 극단적인 ‘환경 결정론자’였다. 위대한 음악가들 중에 한두 살 때부터 자연스럽게 바이올린을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고 집 안에 클래식 음악이 가득 차 있는 환경 속에서 컸다는 이야기에 자극되었다. 특히 유창한 영어 구사 능력을 위해 좀 더 일찍, 좀 더 어릴 때 영어에 친숙해지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하는 것이 부모의 당연한 책임이라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바뀐 것은 둘째로 얻은 쌍둥이 자매 지우, 유나를 키우면서였다.
지우, 유나는 태어난 이후 서로 잠시도 떨어져 있은 적이 없다. 엄마 품에도 늘 같이 있었고 어린이집에도 같은 반에서 같은 친구들과 선생님의 보살핌을 받았다. 당연히 아빠가 밤마다 머리맡에서 읽어주는 영어 동화책과 한글 동화책도 함께 들었고 문화센터 발레도 함께 배우고 동물원도 함께 갔다. 즉 출생 후 동일한 환경과 조건에서 동일한 ‘인풋’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쌍둥이 지우, 유나의 ‘아웃풋’은 전혀 달랐다. 오래전부터 오른손만 사용하는 유나와 달리 왼손잡이 지우는 벌써 초등학생처럼 크레파스를 잡고 사람이나 사물의 형태를 제법 비슷하게 그려낸다. 유나는 그림에는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아빠가 읽어준 동화책을 한 번 듣고는 거의 그대로 외워 버리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교육을 받은 쌍둥이이지만 한 명은 인문계, 다른 한 명은 예체능계라고 할 수 있겠다.
성격도 완전히 다르다. 유나는 애교가 많은 대신에 고집불통이고 지우는 순한 대신 눈물이 많다. 키나 몸무게 등 발육 상태도 다르고 좋아하는 음식도 옷 스타일도 다르다. 같은 엄마 아빠 피를 물려받아 한날한시에 태어나 같은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이렇게 다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렇게 아이들을 보는 시선이 좀 바뀌다 보니 조기교육에 대한 아빠의 조바심과 조급증도 상대적으로 줄고 큰딸과는 다르게 둘째 셋째 쌍둥이들은 영재교육원, 영어유치원에 보낼 생각도 없어졌다. 창의력을 키워준다는 말에 선뜻 사버린 고가의 장난감을 억지로 가지고 놀게 유도하기보다는 아이들이 진짜 좋아하는 놀이터에 풀어 놓고 마음대로, 정말 마음대로 놀게 해주는 시간도 더 늘어났다.
이렇게 키우든 저렇게 키우든 그래서 나중에 뭐가 되든 다 우리 딸들의 소중한 인생이고 운명이고 그들의 삶이리라. 조기교육 기회를 놓쳐서 영어 발음 좀 나쁘고 학교 공부 좀 못하면 또 어떠랴. 그래서 명문 대학 못 가면 또 어떠랴. 다르게 태어난 아이들이 자신의 ‘다름’을 마음껏 펼친다면 어디서 뭘 하든 그들의 인생은 찬란하고 아름다운 인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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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후반의 광고기획자인 필자는 일곱 살 큰딸 보미와 네 살 유나·지우 쌍둥이를 키우는 가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