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고 굳게 믿는 미스 공. 그녀 앞에 마음에 쏙 드는 남자가 등장한다. 어쩌다 남자의 다이어리를 손에 쥔 여자는 그가 가는 곳이면 빠짐없이 얼굴을 내민다. 우연이 아닌 의도적 접근이란 사실이 들통 나면서 우여곡절을 겪지만 결국 사랑을 쟁취한다. 귀여운 이미지를 가진 여배우 장나라가 ‘깜찍한 스토커’로 주연한 ‘오! 해피데이’(2003년 개봉) 줄거리다.
▷현실은 소설이나 영화와 다르다. ‘나 싫다’는 사람을 향한 정상궤도를 벗어난 집착은 소름 돋는 스토킹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에는 자신의 구애를 거절한 여대생에게 ‘얼굴을 염산으로 녹여주겠다’는 등 끔찍한 협박이 담긴 카톡과 문자 메시지를 두 달 동안 10만 건 보낸 대학생이 구속됐다. 스토킹은 젊은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최근 일본에선 85세 남성이 ‘만나주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며 79세 여성을 괴롭히다 경찰에 체포됐다. ‘스토커 할배’는 5년 전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같은 병실을 쓴 여성 환자의 남편이었다. 나 혼자만의 호감이 섬뜩한 집착으로, 친절한 신사가 공포의 가해자로 변한 것이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