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꺼! 반칙운전]진화하는 외제차 사기, 줄줄 새는 보험료<上>
지난해 11월 11일 오후 11시 45분경 경기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 왕복 2차선 도로. 맥주 3병(1920mL, 0.078%)을 마신 뒤 BMW 차량을 몰던 A 씨(46)는 전신주를 들이받았다. 하지만 A 씨는 부인 B 씨(43)와 짜고 부인이 운전한 것처럼 보험사에 이야기해 보험금 3000만 원을 받아내려했다. 보험사는 목격자와 공업사 직원을 통해 해당 사실을 밝혀냈다. A 씨는 결국 보험금 청구를포기하겠다는 확인서를 보험사에 제출했다. 현대해상 제공
A 씨의 수법은 이랬다. 차를 타고 달리다 급정거를 해 추돌사고를 유도하거나 일방통행 길에서 역주행하는 차량을 노려 고의로 사고를 냈다. 1월 7일에는 대전 중구 시내를 돌아다니며 기회를 엿봤다. 그는 교차로에 다다를 무렵 신호가 주황색으로 바뀌면 마치 교차로를 통과할 듯 가속 페달을 밟다가 갑자기 정지선 부근에서 급정거를 해 뒤차가 들이받도록 했다. 그는 “몸은 괜찮다”며 가해 차량 운전자를 안심시킨 대신 보험사에는 수리비를 청구했다.
A 씨가 이런 방법으로 2012년 7월부터 올 1월까지 낸 사고만 23차례로 총 2억3000만 원가량을 챙겼다. 보험사는 “A 씨는 사고 때마다 음료를 마시고 있었고, 그게 시트 전체에 쏟아졌다며 시트까지 갈아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를 고의라고 입증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보험사는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외제차 보험사기는 조직화 전문화되고 있다. 특히 병원장, 보험회사 직원, 정비공장 등 사고 관련 전문가들이 끼어 수리비와 보험금을 올리는 조직화 대형화 범죄가 되다 보니 더욱 대응하기 힘들어졌다. 지난해 11월 병원장, 보험사 직원들까지 합세해 총 45회에 걸쳐 6억 원을 편취한 보험사기단이 적발됐다. 지난해 6월에는 외제차 동호회원들과 정비업소가 32회에 걸쳐 3억5000만 원의 보험금을 타낸 사건도 적발된 바 있다.
김홍주 서울지방경찰청 교통범죄수사팀장은 “진화하는 사기 수법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최근에는 차 뒤에 중고 요트를 달고 가다 고의로 사고를 내 요트를 파손시켜 수천만 원을 타내거나 3000만 원에 달하는 ‘외장 튜닝’을 한 뒤 페인트로 고의로 낙서를 한 뒤 ‘누가 내 차에 낙서를 했다’며 보험금을 타내는 등 수법이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 ‘미수선 수리비’ 악용
불명확한 외제차 부품 원가와 공임비도 문제다. 국내 수입차 부품 시장을 일부 직영 딜러들이 독점으로 유통하면서 부품비와 공임비 문제는 외제차 지급 보험금을 상승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됐다. 정부는 자동차관리법을 개정해 1월 17일부터 자동차 제작사 홈페이지에 자동차부품 가격 자료 공개를 의무화했지만, 별도 처벌 규정이 없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자동차 보험사기가 ‘저위험 고소득’ 범죄라는 인식도 문제다. 금융감독원이 2012년 보험사기 혐의 조사사건 중 지난해 말까지 판결이 확정된 82건을 분석한 결과 자동차 관련 범죄자는 275명으로 이 가운데 징역형은 10.5%(29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벌금형(74.2%·204명)이나 집행유예(15.3%·42명)였다. 특히 자동차 보험사기의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로 역할을 나눈 다수의 공범이 벌인 사고가 많아 1인당 평균 편취금액이 700여만 원으로 소액이다. 이 때문에 정식 재판도 아닌 약식명령에 의한 벌금 처분을 받는 경우가 56.7%(156명)로 절반을 넘겼다.
○ 보험 가입자에 피해, 강력한 처벌을
결국 이런 보험사기 피해는 보험료 증가 요인으로 이어져 다수의 선량한 보험 가입자들에게 돌아간다. 지난해 12월 자동차보험 손해율(거둬들인 보험료 대비 지급 보험금 비율)이 96%까지 올라가 1조 원가량의 적자를 본 손해보험회사 중 일부는 보험료를 2∼3% 인상했으며 나머지 보험사들도 보험료 인상을 고려하고 있다. 김성 손해보험협회 보험조사팀장은 “확산되고 있는 지능적인 보험사기를 막기 위해선 집행유예보다 강력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보험업계가 수사기관과 공조해 조사활동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