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 청년일자리, 규제개혁단이 간다] 정부-지자체 엇박자에 눈물
“언제쯤 달릴 수 있을까” 9일 김민태 씨가 경기 평택시 고덕면에 있는 자신의 마사(馬舍)를 둘러보고 있다. 김 씨는 2년 전 승마장을 세우기 위해 키우던 소를 팔고 말을 사들였지만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승마장 영업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평택=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고교 진학을 결정할 때 김 씨의 부모는 정부가 ‘말 산업 육성법’ 제정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듣고 딸에게 관련 특성화고 진학을 권했다. 하지만 김 씨의 꿈은 현장실습을 나가 국내 승마장의 열악한 현실을 목격하고 산산조각이 났다. “어렵게 승마장에 취업해도 한 달에 100만 원 남짓 벌어요. 진학할 때는 다들 ‘졸업 땐 좋아질 것’이라고 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어요.”
말 산업은 정부의 산업 육성 정책과 지방자치단체의 규제가 따로 노는 대표적인 현장이다. 취업난 속에서 정부의 약속을 믿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 청년들은 날벼락 같은 규제의 벽에 가로막혀 또 한번 좌절한다.
경기 평택시의 김민태 씨(51)는 정부 정책을 믿고 2년 전 소를 팔고 말 13마리를 들여놓았다가 큰 손해를 봤다. 소규모 농어촌형 승마장을 허용한 말 산업 육성법 시행에 맞춰 승마시설에 2억 원 가까이 투자하고 승마 교관, 마부, 사무 여직원 등을 뽑았다. 하지만 평택시는 농지법 규정을 들어 승마장 영업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김 씨는 “지금은 혼자 말 7마리를 키우고 있지만 승마장 허가가 나지 않으면 이마저 팔아치워야 할 처지”라고 말했다.
정부는 5년 전부터 승마 등 말 산업 활성화 정책을 쏟아냈지만 규제를 제대로 풀지 못했다. 대표적인 규제가 초지와 농지에 승마장을 세울 수 없도록 한 초지법과 농지법. 승마장은 체육시설로 간주돼 축산업과 농업을 위해 조성된 땅에 지을 수 없다. 지자체가 전용(轉用) 허가를 내주면 영업이 가능하지만 이마저 쉽지 않다. 송강호 말산업중앙회 사무총장은 “지자체가 주민 민원, 환경오염 등을 거론하며 승마장으로 전용 허가를 내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 정부는 산업 육성, 지자체는 전용 반대
○ “규제 칼자루 쥔 지자체부터 인식 바꿔야”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11월에 2017년까지 승마장은 500곳으로, 승마 회원은 10만 명으로 늘리겠다는 승마 활성화 계획을 발표했다. 말 조련사, 승마 지도사 등 전문 인력도 지금의 3배 이상으로 늘려 1500명 정도 키우는 등 일자리 3500개가 새로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소규모 승마 체험 시설요건을 완화하고, 농지법과 초지법 전용 목적에 ‘승마시설 운영’ 항목을 추가하는 법 개정도 준비 중이다. 하지만 규제 칼자루를 쥐고 있는 지자체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관련 산업 활성화나 일자리 창출은 물 건너갈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이철호 포항대 말산업레저스포츠과 교수는 “말이 환경을 훼손하고 위험하다는 잘못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며 “말 목장과 승마산업을 결합시키면 농가 소득도 올리고 청년 일자리도 늘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주선 SK경영경제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정책에 맞춰 성과를 내는 지자체엔 세제 혜택 및 규제 권한을 더 주는 방식을 통해 지자체가 스스로 움직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