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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건 기자의 그런거野]바람난 방망이… 관중석 바람 빠질라

입력 | 2014-04-10 03:00:00


기상 관측 이후 처음으로 3월부터 서울에 벚꽃이 피었다. 예년보다 따뜻한 날씨. 관중석에는 봄바람이 살랑대지만 그라운드에는 ‘타고투저(打高投低)’ 바람이 거세다.

35경기를 치른 8일 현재 9개 구단의 평균 타율은 0.271이고 팀 평균자책점은 4.60이다. 2년 전 타율 0.258, 평균자책 3.82점에 비해 타율은 1푼 이상, 평균자책은 1점 가까이 올랐다. 경기당 홈런 수는 1.86개로 2개에 육박한다. 2012년은 1.16개, 지난해는 1.39개였다. 보통 정규시즌 초반에는 마운드가 방망이보다 강하다. 야수들의 타격 폼이 투수에 비해 늦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하면 올 시즌 타고투저 현상은 더 두드러진다. 지난 시즌 36경기를 했을 때 경기당 홈런 수는 1.06개에 불과했다.

1999∼2001시즌은 프로야구 출범 이후 타고투저의 최대 전성기였다. 3년 연속 팀 타율 0.270, 평균자책 4.60을 넘었다. 2002년부터 이런 현상은 조금씩 가라앉았다. 2006년에 팀 타율은 0.255, 평균자책은 3.58까지 떨어졌다. ‘투고타저(投高打低)’로 바뀐 것이다. 화끈한 공격 야구가 줄어들자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나섰다. 2007년부터 마운드 높이를 낮추고 스트라이크존을 좁혔다. 효과가 있었다. 방망이는 다시 춤추고 마운드는 숨을 죽였다. 3년 뒤인 2009년 팀 타율은 0.275, 평균자책은 4.80까지 치솟았다. 박용택(LG)이 10년 만에 3할7푼대의 고타율(0.372)로 타격왕이 됐고 로페즈(KIA) 등 3명이 역대 최소 승수(14승)로 다승왕이 됐다. 덩달아 평균 경기 시간도 크게 늘었다. 전년보다 8분이 더 걸려 역대 최장인 3시간 22분을 기록했다.

타고투저가 2001년 정점을 찍은 뒤 완화됐듯 2009년 두 번째 정점을 찍은 타고투저 역시 2010년부터 균형을 찾아갔다. KBO가 ‘스피드 업’을 위해 스트라이크존을 확대하고 투수의 12초 룰을 강화한 것도 주효했다. 그러다 올해 다시 불쑥 머리를 내민 것이다.

올 시즌 타고투저는 예상됐던 일이긴 하다. 외국인선수 보유 한도가 기존의 팀당 2명(NC는 3명)에서 3명(NC는 4명)으로 늘면서 야수 1명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최근 2년 동안 볼 수 없었던 외국인 타자를 모든 팀에서 만날 수 있게 됐다. LG 조쉬 벨, KIA 필, 삼성 나바로, SK 스캇, 두산 칸투, 한화 피에 등 힘 좋은 타자들이 홈런 등 타격 각 부문의 상위권에 포진하며 타고투저에 큰 몫을 하고 있다.

급증한 볼넷도 타고투저를 부추긴다. 2012년 6.9개였던 경기당 볼넷은 지난해 7.6개로 늘었고 올해는 8.4개(8일 현재)로 껑충 뛰었다. 일본 센트럴리그(7.1개)나 미국 메이저리그(6.5개)보다 훨씬 많다. 한 심판위원은 “볼넷 하나에 경기 시간이 5분 정도 늘어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적당한 타격전은 웬만한 투수전보다 재미있다. 하지만 많은 볼넷을 동반한 타고투저는 ‘야구는 지루하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 올 시즌 평균 경기 시간은 3시간 21분이나 된다. 지난해보다 1분, 2년 전보다 10분이 늘었다. 연장전을 제외해도 3시간 18분이나 된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경기 시간(9이닝 기준)은 3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재미있는 영화도 너무 길면 지루하다. 그렇다고 해서 타자에게 대충 때리라고 할 수도 없는 일. 빠른 경기 진행을 위해 감독과 선수들의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본격적인 순위 싸움이 시작되면 경기는 더 늘어질 가능성이 높다. 2014년이 ‘역대 최고의 타고투저 시즌’으로 남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역대 최장 경기 시간 시즌’으로 남는 것은 피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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