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세상을 바꿉니다]<4>알 권리 막는 공공언어 공공언어, 해외선 어떻게
“쉬운 언어는 시민의 권리다.”
1970년대 미국 정부가 ‘쉬운 공공언어’ 정책을 펼치며 내세운 구호 중 하나다. 2010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행정문서를 최대한 쉽게 표현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을 담은 ‘알기 쉬운 문서 작성에 관한 법’에 서명했다. 이듬해 공포된 연방 가이드라인에 따라 정부 공무원들로 구성된 커뮤니티 ‘PLAIN’이 각 부처에 쉬운 문서 작성에 관련된 세미나와 문서 작성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2012년부터 ‘알기 쉬운 법 규정에 관한 법’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주요 선진국들은 ‘쉬운 법률 만들기’를 법으로 의무화하거나 정부 내에 독립적인 법률용어 순화기구를 운영하고 있다. 각국이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국민의 생활 편의를 증진시키는 동시에 행정체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독일과 프랑스는 정부 내에 쉬운 언어 사용을 장려하기 위한 독립 기구를 뒀다. 독일에선 문화부의 지원을 받는 ‘독일어협회’가 의회와 행정부의 법령 제정 과정에서 쉬운 언어 사용에 대한 조언을 하고 있다. 한국 형법이 절도죄의 대상을 ‘타인의 물건’으로 규정해 범위가 모호한 것과 달리 독일에선 ‘타인의 움직이는 물건’이라고 명확하게 정의하는 방식이다.
프랑스 또한 ‘명확하지 않은 것은 프랑스어가 아니다’라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간결하고 정확한 전문용어를 만들고 보급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총리 직속기관인 프랑스 언어총괄국은 프랑스어 연구, 감시, 홍보, 장려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법률 및 행정용어를 단순화하는 작업도 함께 맡고 있다.
영국은 시민운동이 언어문화를 바꾼 사례다. 1979년부터 시민들이 모여 만든 ‘쉬운 영어 캠페인’이 정부의 각종 공문서와 법률, 보험 등에서 어려운 말을 쉬운 말로 바꾸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 운동은 민간기업으로도 퍼져 ‘쉬운 영어가 곧 소비자 보호’라는 인식을 갖게 만들었다.
김현희 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법과 규칙은 현재 국민의 의식과 정신을 대표하는 언어체계이니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며 “언어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 국민과 학교에서도 ‘쉬운 언어’와 ‘쉬운 법률’의 중요성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