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어린이 책]주몽이 동부여 탈출하는 표정 보이나요

입력 | 2014-04-12 03:00:00

◇삼국유사/이현 글·정승휘 그림/156쪽·9000원·웅진주니어




웅진주니어 제공

보는 이에 따라 ‘아, 또 나왔네!’ 할 수 있는 책입니다. 역사와 이야기가 공존하는 삼국유사 원전은 어린이 책을 만드는 사람에겐 보물창고입니다. 그래서인지, 삼국유사나 그와 유사한 제목을 가진 책이 한 해에 몇 권씩 나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책은 원전을 가볍게 소비할 뿐, 그것이 가진 가치에 한 걸음도 접근하지 못합니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밝혔듯이 삼국유사의 건국신화를 모아 놓았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고, 이미 많은 책에서 다루었던 내용입니다. 그런데도 눈길을 끄는 이유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또 다른 느낌으로 볼 수 있게 배치하는 방법 때문입니다.

책의 첫 장을 넘기면 쓸쓸한 그림과 함께 천년 왕국 신라의 종말이 들립니다. ‘그것이 하늘의 뜻일까?’라며 비탄 섞인 어조로 말이죠. 신라 마지막 왕자 김일(마의태자)의 목소리입니다. 책의 마지막 장, 신라의 마지막 공주와 왕자가 평범한 백성이 되어 길을 떠납니다. 김일은 말합니다. ‘나는 백성들의 이야기를 모으겠다. 그 이야기가 전해지면 천 년, 이천 년 뒤 후손들도 우리를 기억하는 것이다.’ 이 두 장면 사이에 김일이 들려주는 고조선과 삼국의 건국신화가 녹아있습니다.

이런 배치는 삼국유사가 가진 이야기성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그러나 지금 없어지고 있는 나라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야기로라도 남기고 싶은 김일의 마음이 읽힙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가 가진 간절한 힘이 저절로 느껴집니다.

판화 스타일의 그림도 이야기를 살리는 데 큰 몫을 합니다. 형태만 보일 뿐인 인물들이, 글과 어우러지면서 표정이 생깁니다. 위의 그림은 동부여 왕자들을 피해 도망가는 주몽 무리입니다. 염수라는 강 앞에 도달하니, 물고기와 자라들이 다리를 만들어 줬답니다. 잘 보세요, 다급하고, 당황하고, 당당하고, 안도하는 그들의 표정이 보이시나요?

삼국유사는 거대한 이야기 원형의 창고입니다. 그것을 이 시대에 맞게 가공하는 일, 우리의 몫입니다. 이 책은 그 길을 보여줍니다.

김혜원 어린이도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