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이현 글·정승휘 그림/156쪽·9000원·웅진주니어
웅진주니어 제공
이 책은 제목에서도 밝혔듯이 삼국유사의 건국신화를 모아 놓았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고, 이미 많은 책에서 다루었던 내용입니다. 그런데도 눈길을 끄는 이유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또 다른 느낌으로 볼 수 있게 배치하는 방법 때문입니다.
책의 첫 장을 넘기면 쓸쓸한 그림과 함께 천년 왕국 신라의 종말이 들립니다. ‘그것이 하늘의 뜻일까?’라며 비탄 섞인 어조로 말이죠. 신라 마지막 왕자 김일(마의태자)의 목소리입니다. 책의 마지막 장, 신라의 마지막 공주와 왕자가 평범한 백성이 되어 길을 떠납니다. 김일은 말합니다. ‘나는 백성들의 이야기를 모으겠다. 그 이야기가 전해지면 천 년, 이천 년 뒤 후손들도 우리를 기억하는 것이다.’ 이 두 장면 사이에 김일이 들려주는 고조선과 삼국의 건국신화가 녹아있습니다.
판화 스타일의 그림도 이야기를 살리는 데 큰 몫을 합니다. 형태만 보일 뿐인 인물들이, 글과 어우러지면서 표정이 생깁니다. 위의 그림은 동부여 왕자들을 피해 도망가는 주몽 무리입니다. 염수라는 강 앞에 도달하니, 물고기와 자라들이 다리를 만들어 줬답니다. 잘 보세요, 다급하고, 당황하고, 당당하고, 안도하는 그들의 표정이 보이시나요?
삼국유사는 거대한 이야기 원형의 창고입니다. 그것을 이 시대에 맞게 가공하는 일, 우리의 몫입니다. 이 책은 그 길을 보여줍니다.
김혜원 어린이도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