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해적/김석균 지음/536쪽·2만8000원·오션앤오션
사략선이란 16세기부터 유럽 각국 정부로부터 적국 선박의 나포면허장을 받고 ‘합법적 해적질’을 할 수 있는 민간 선박을 말한다. 대영제국 해군의 역사는 이 사략선에서 시작했다. 1588년 영국 해군을 이끌고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퇴한 프랜시스 드레이크(1540∼1596)는 사실 1577∼1580년 남미 해안에서 스페인 배를 약탈하던 사략선 선장이었다. 그가 1579년 1200만 파운드의 보물을 실은 스페인의 카카푸에고호를 약탈한 사건은 역사상 가장 성공적 해적질로 꼽힌다.
그렇다면 티치는 왜 드레이크 같은 영웅이 못 되고 블랙 비어드로 전락했을까. 역설적이게도 1714년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이 끝난 뒤 25년간 평화의 시대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 해군은 4만 명이나 일자리를 잃었는데 사략선마저 금지되자 무자비한 해적으로 돌아선 것이다. 해적은 이처럼 평화와 빈곤이 결합한 산물일 때가 많다. 현대의 해적 역시 탈냉전기 평화와 제3세계 빈곤이 만나며 탄생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