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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그려놓은 나의 미래… ‘남다른 꿈’은 꿈도 못꿔요”

입력 | 2014-04-15 03:00:00

[행복 충전 코리아]<1부>아이와 젊은이가 행복한 나라
‘자녀의 꿈’ 아시나요?




여고 2학년 A 양은 과학고를 거쳐 의대에 가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언니를 늘 동경해왔다. A 양 역시 중학교 때는 성적이 좋았지만 원하던 외고에 떨어진 뒤 조울증이 왔다. 고교 1학년 학교생활기록부는 출석보다 결석 기록이 더 많았다.

A 양이 두 달가량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던 중 의사는 A 양의 어머니도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자녀를 우등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A 양 어머니의 강박증이 딸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것. 서울대 출신인 남편에 비해 중상위권 대학을 나온 자신을 ‘루저’라고 규정하는 어머니의 부정적인 자아가 문제였다. 자매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짜놓은 혹독한 틀을 따라왔고, 한 번이라도 삐끗하면 낙오자가 된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 부모의 강박감에 짓눌린 아이들

사회는 급속하게 변하지만 사농공상(士農工商)에서 비롯한 뿌리 깊은 직업 귀천의식 때문에 모두가 획일적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 현실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남다른 꿈을 갖고 미래를 설계하는 아이는 부적응자나 이단아로 치부되는 분위기다.

신종호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우리 교육 현실이 아직까지 산업화 모형에 머물러 있고 재단된 결과를 추구하도록 하고 있다”면서 “학교라는 교육제도가 요구하는 능력만을 부여하고 개개인을 붕어빵처럼 찍어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남들이 가는 길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밟아야 하는 길은 무한대로 늘고 있다. 부모들은 지역 학년 교육관에 따라 수십 개의 공식을 정해 놓고 아이를 어느 길로 밀어붙일지 저울질한다. 예를 들어 서울 노원구에 사는 학부모는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 태권도, 영어 3종 세트를 시키고→S나 Y 사립초에 보내고→공립 중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4, 5학년 때 공립 초등학교로 전학을 시키고→특목고가 안 되면 최소한 일반고 중 Y고 이상에 배정받도록 하고→그 이하 고교에 배정 받으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한다’는 식의 시나리오를 세워 놓는 이들이 많다.

특히 30, 40대 학부모 가운데 자신의 부모 세대의 교육열을 등에 업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일수록 자녀들을 공식대로 키우려는 경향이 강하다. 입시 컨설턴트들은 교수,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종의 부모가 자녀를 특목고나 상위권 대학에 보내겠다는 집착이 강하다고 입을 모은다. 자신이 누려본 것을 자녀도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 자신의 지위를 마지노선으로 설정하고 자녀를 그 이상으로 밀어 올려야 한다는 부담이 뒤섞여 아이를 몰아붙인다는 말이다.

서울 한양초등학교 이인순 교사는 “부모가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아이들 가운데 과도한 학원 부담 때문에 틱 장애를 겪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면서 “부모가 모든 계획을 짜서 자녀를 학교 행사, 경시대회, 학원마다 빠짐없이 끌고 다니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 교사는 “이런 아이들을 보면 자기주도성이나 시간관리 능력이 떨어지고 매사에 힘들어한다. 적어도 초등학교 때에는 학원을 끊거나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 부모가 아이를 분리해야

자녀가 어릴 때는 이런 틀에 박힌 교육을 멀리하던 학부모도 아이의 학년이 올라갈수록 주변의 말에 흔들리고 젖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부모가 자녀의 성적에 따라 자신의 지위가 달라진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동조 현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윤동수 진학사 청소년교육연구소 이사는 “학부모 상담을 해보면 자기와 비슷한 수준의 학부모가 사교육 정보에 노출되는 것을 보고 자기 자녀도 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는 자기와 같은 급이라고 생각했던 학부모가 자녀의 성적이 오르면 자기보다 높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틀에 박힌 교육 풍토를 바꾸려면 부모가 자녀를 독립된 존재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안경식 부산대 교육학과 교수는 “이미 학부모가 틀에 맞춰 살도록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자녀도 그런 식으로 키우는 것이 잘못됐다는 걸 자각하지 못한다”면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존재인데 부모가 아이를 위한답시고 관리를 한다면 결국 그 아이는 남의 인생을 살게 될 뿐”이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최근 범람하는 학부모 교육들이 입시정보 위주 교육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부모가 자녀의 삶을 독립적이고 주도적인 것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꿈이 있는 아이들을 만들려면 앞으로 직업 세계가 어떻게 변화할지 중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자녀의 인생이 단기간에 승부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지금처럼 물질적인 부와 안정성에 초점을 맞춰 자녀의 진로를 폐쇄적으로 이끈다면 불행한 아이들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아이들이 살아갈 세대에는 특정 직업이면 무조건 돈을 많이 벌거나 정년퇴임을 보장받는 식의 사회가 아니다. 직업에 대한 평가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에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신종호 교수는 “대학에 가면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닌데 한국 부모들은 너무 어린 나이에 자녀의 인생에 승부를 내려고 한다”면서 “자녀가 30대나 40대에 진정 행복할 수 있도록 긴 안목에서 아이의 인생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희균 foryou@donga.com·전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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