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증거조작’ 수사 발표 후폭풍] A4용지 2쪽 분량 대국민사과
“일부 직원이 증거 위조로 기소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합니다. 고강도 쇄신으로 국정원이 환골탈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15일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남 원장은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 본원에 마련된 브리핑실에 굳은 표정으로 들어서 짧게 고개를 숙였다. 그는 “국민께 심려를 끼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한 차례 고개를 더 숙인 뒤 굳은 표정으로 사과문을 읽어 내려갔다. 단호한 음성으로 A4 용지 2쪽 남짓한 분량의 사과문을 읽는 3분 동안 모두 세 차례 고개를 숙였다.
남 원장은 “낡은 수사 관행과 절차 혁신을 위해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강도 높은 쇄신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또 “과학화된 수사기법을 발전시키고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대공 수사능력을 한층 강화하겠다”며 “국민 여러분의 질타와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여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최고의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 사과문을 읽고 난 남 원장은 기자들의 질문은 받지 않았다. 기자들이 “질문 하나 하겠다”고 요청했지만 남 원장은 그대로 회견장을 떠났다.
결과적으로 사과문에는 이번 사태가 왜 발생했고 국정원이 어떤 책임을 지거나 쇄신을 하겠다는 것인지 국민을 충분히 설득시킬 만한 알맹이가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 원장은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이번 사건을 ‘일부 직원’으로 선을 그었다.
이날 회견은 국정원 측이 14일 밤늦게 검찰 출입 기자단에 남 원장의 입장 발표 소식을 알리면서 이뤄졌다. 증거조작 사건과 관련해 남 원장이 직접 입장을 내놓는 것은 처음이라 30여 명의 취재진이 브리핑실을 메웠고 방송 중계차와 카메라 수십 대가 몰렸다. 하지만 남 원장의 입장 발표는 일방적으로 성명서를 낭독하는 것으로 끝났다. 취재진 사이에서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가 하루 지난 마당에 이런 식의 사과 성명이면 뭐 하러 했느냐는 지적이 나오자 국정원 관계자는 “대통령도 사과를 하는데 국정원장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남 원장이 사과 성명을 발표하는 똑같은 시각에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국민들에게 송구스럽다”고 사과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