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끝나지 않는 악몽]판결문 통해 본 14명의 죽음
○ 사망 아동들 지속적인 학대에 시달려
동아일보는 2001년 이후 주요 아동학대 사망 사건(학대치사 상해치사 폭행치사 등)의 판결문 14건을 분석했다. 전체 14건 중 13건의 피해 아동들은 수개월부터 길게는 3년에 걸쳐 지속적인 학대를 겪다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영이 경우는 학대 신고가 있어 새엄마가 수사를 받은 적도 있으나 아무런 조치 없이 풀려나 지영이의 사망을 막지 못했다. 사망하기 약 1년 전 지영이 남매가 다니던 교회 전도사는 아이들 등에 매 자국이 선명하고 엉덩이와 허벅지가 심하게 부어 걷지 못할 정도인 것을 보고 계모를 경찰에 신고했다. 장 씨는 긴급 체포돼 조사까지 받았지만 “더이상 학대하지 않겠다”는 각서만 쓰고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오히려 그 이후 학대가 더 심해졌다. 결국 새엄마 장 씨는 상해치사 등 혐의로 기소돼 징역 12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아이들의 학대 사실은 대부분 사망한 뒤에야 뒤늦게 드러났다. 가정학대 범죄는 피해 아동들이 학대당한다는 사실을 드러내길 꺼리는 데다 함께 사는 부모의 보복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계모가 시켜 여동생을 때렸던 학대 피해자 A 군(당시 14세)은 칠곡 계모 의붓딸 사망 사건에서와 마찬가지로 경찰조사에서 ‘내가 동생을 때렸다’고 진술했다가 조부모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계모의 학대 사실을 일관되게 진술하기 시작했다. 6세 아들을 상습 구타하고 방치해 숨지게 한 강모 씨(50) 사건의 경우 병원 관계자가 병원에 실려 온 아이의 상태를 보고 학대를 의심해 신고했으나 아이가 사망하고 난 뒤였다.
○ 살인 혐의 적용은 전무…형량 징역 4∼6년
사망한 아이들은 죽음에 이를 정도로 지속적으로 학대를 당했지만 수사기관은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고 보고 14건 모두 치사(致死·결과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함) 혐의로 기소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정수경 변호사는 “조두순 사건’이 아동 성범죄가 인격살인이라는 점에서 엄벌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점이 된 것처럼 이번 논란을 계기로 적극적으로 아동학대 범죄에 살인죄를 적용하고 엄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대 가해자에 대한 선고 형량은 대부분 징역 4∼6년에 그쳤다. 피해자 가족이 처벌을 원치 않고 피고인이 반성하는 자세를 보이는 경우, 사망한 아이 외에 양육해야 할 다른 아이가 있는 경우엔 항소심에서 1∼2년이 감형된 사례도 있었다.
아동학대에 경각심이 높아지는 것은 좋지만 그로 인해 사건 관련자들이 2차 피해를 보는 일도 있다. 학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터넷상에 학대로 숨진 아이들의 사진이 무분별하게 유포되고, 재판 과정에서 협박을 당해 사임한 가해 부모 측 변호인도 있었다. 한 판사는 “지금 아동학대에 대한 여론의 양형기준은 상한이 없는 상태나 마찬가지”라며 “아동학대 양형에 대한 법적, 사회적 검토가 충분히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서현 baltika7@donga.com·홍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