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TV나 인터넷TV(IPTV)와 관련된 복잡한 규정으로 인해 소비자들은 ‘골라서 볼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 동아일보DB
황근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컨슈머워치 운영위
우리 방송법은 케이블TV를 지역별 독점 체제로 만들어 놓았다. 2개 이상 케이블TV 사업자(정식 명칭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ystem Operator·SO)로 가정에 케이블과 컨버터를 설치해주고 시청료를 받는다)가 있는 지역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한 사업자가 독점하고 있다. 1200만 케이블TV 시청자가 지역독점체제 속에 갇혀 있는 셈이다.
다른 나라도 그러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경쟁 체제를 택하고 있다. 지역별로 여러 케이블TV 사업자가 경쟁하고 있고, 시청자들은 그중에서 가장 값싸고 좋은 채널들을 제공하는 업체를 선택하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고, 그만큼 시청자들은 더 나은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IPTV는 지역별로 그 지역 유료방송 전체 가입자의 3분의 1 이상을 넘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케이블TV 사업자들의 눈치를 본 결과다. 얼핏 사업자들끼리의 문제 같지만 결국 소비자들의 선택을 제한하는 규제다. IPTV를 보고 싶어도 이미 전체 가입자의 3분의 1을 넘어선 지역에서는 새로 가입할 수 없다는 말이다. 소비자가 왕인지, 케이블TV 사업자가 왕인지 혼란스러울 뿐이다.
최근 품질 좋은 디지털 화질과 다양한 채널을 제공하는 IPTV 가입자가 크게 늘어났다. 그 때문에 많은 지역에서 가입자 수가 ‘3분의 1’ 수준에 가까워졌다고 한다. 이런 현상에 겁을 먹은 케이블TV 사업자들은 케이블TV와 위성방송, IPTV 가입자를 모두 합해서 규제하자는, 이른바 ‘유료방송 합산규제’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IPTV와 위성방송을 함께 소유하고 있는 사업자는 신규 가입자를 받을 수 없게 된다. 이미 가입자 수가 많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케이블TV 사업자들을 위해 시청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규제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독점체제가 유지되다 보니 케이블TV 사업자들이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보여 왔다. 나중에 진입한 위성방송이나 IPTV에 자기가 소유한 인기 채널들이 못 나오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또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보다는 인터넷 사용료 수입을 노려 저가 가입자 확보 경쟁에만 몰두해왔다. 많은 시청자가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지상파 방송 채널 사이사이에 들어가 있는 홈쇼핑 채널들도 바로 이들 케이블TV의 수익을 늘리기 위한 것이다. 한마디로 경쟁이 없는 독점 사업이 소비자의 선택권을 무시해도 상관없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케이블TV의 지역 독점을 보장해준 데는 나름 이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5년 케이블방송 출범 초기, 한 지역에서 여러 사업자가 각자 케이블TV 망을 깔고 경쟁하다 보면 산업 자체가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런 규제는 케이블TV 사업자들의 기득권만 보호해줄 뿐 정작 중요한 소비자들의 선택권은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지역 독점 체제를 벗어나 케이블TV든, 위성방송이든, IPTV든 시청자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이 사업자들도 양질의 프로그램을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해 경쟁할 것이다.
황근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컨슈머워치 운영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