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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수도권]버스운전사 운행전 서명 날인 논란

입력 | 2014-04-17 03:00:00

서울시, 송파 사고 이후 도입
“충분한 휴식 취했고 시간 초과 근로 하지 않았음을 확인”




19명의 사상자를 낸 지난달 19일 ‘송파 버스 사고’ 이후 서울시가 시내버스 운전사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는 등 운행하기 전 확인사항에 서명 날인을 한 뒤 운행하도록 해 논란을 빚고 있다. 운전사 스스로 운행에 지장이 없다는 것을 ‘서약’한 터라 졸음운전 등으로 사고가 났을 시 사고 책임이 버스 관리를 담당하는 서울시나 업체가 아닌 운전사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16일 “‘송파 버스 사고’ 이후 안전관리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어 이달 말까지 시내 66개 버스업체, 차량 7500여 대를 대상으로 전수 안전 점검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는 경찰, 교통안전공단, 차량 제작사(현대자동차, 대우버스)와 함께 안전 교육과 배차실 운영을 비롯해 타이어 마모를 포함한 차량 결함 등 총 29개 항목에 대한 점검에 나선다.

서울시는 앞서 9일 각 업체에 새로 ‘사업개선명령’을 내렸는데 이에 대한 이행 여부도 살필 예정이다. 하지만 서울시버스노조는 이 명령에 문제가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 명령에 따르면 운전사는 운행을 시작하기 전 ‘본인은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으며 충분한 수면과 휴식을 취했고 단체협약상 규정된 근무시간을 초과한 과다 근로를 하지 않아 안전 운행에 지장이 없음을 확인하고 운행을 개시합니다’라는 항목에 자필 서명을 해야 한다.

운전사가 본인의 안전 상태를 자가 점검하자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만약 사고가 났을 때 운전사에게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게 문제다. 사고 원인이 졸음이나 과다 근로로 나왔을 경우 운전사가 “비정상적인 운행이 아니다”라는 점에 이미 서명했기 때문에 사고의 책임이 운전사에게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서상범 변호사는 “운전사 입장에서 실제 과다 근로 상태이더라도 서명을 하지 않으면 운행을 할 수 없어 반드시 서명을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업체의 부당 근무 명령으로 해석될 소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와 노조는 이견을 보이고 있다. 이태주 서울시버스노조 정책국장은 “사실상 사고가 났을 경우 귀책사유를 운전사에게 돌릴 수 있는 규정이다. 결국 업체나 시의 관리 책임을 피하기 위한 면피용 조치”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신종우 서울시 버스정책과장은 “시민의 안전을 위해 운전사가 직접 자신의 안전 운행 상태를 점검하자는 취지로 시행됐고 운전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해명했다.

이번 시내버스 점검을 이례적으로 차량 제작사와 함께 펼치는 점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송파 버스 사고의 경우 졸음운전으로 인한 1차 사고가 발생한 뒤 추가 추돌 과정에서 차량 결함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신 과장은 “차량 점검을 좀 더 면밀히 하자는 취지에서 버스 제작사와 함께 점검에 나서는 것이지 ‘송파 버스 사고’의 차량 결함 의혹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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