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호 사건 당시 미국 신문 재벌 조지프 퓰리처(1847∼1911)가 운영한 ‘더월드’는 ‘시민 케인’의 모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이끌던 ‘뉴욕저널’과 함께 선동적 기사를 앞다퉈 실었다. 두 신문은 판매 부수를 늘리기 위해 사사건건 치열하게 경쟁했던 라이벌. ‘황색 저널리즘’이란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였다. 헝가리 태생의 가난한 이민자에서 신문왕에 오른 퓰리처는 훗날 잘못을 반성하고 올바른 언론의 역할을 고민했다.
▷퓰리처상은 그의 유지를 따라 1917년 제정됐다. 황색 저널리즘의 대명사에서 가장 권위 있는 언론상 탄생의 모태가 됐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매년 4월 언론 분야 14개 부문, 문학 음악 등 7개 부문에서 수상자를 발표한다. 언론계 최고 영예의 상으로 자리매김했지만 크고 작은 논란도 있었다. 워싱턴포스트 재닛 쿡 기자는 마약에 중독된 흑인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해설기사 ‘지미의 세계’로 1981년 탐사보도 부문 수상자로 뽑혔으나 나중에 조작 사실이 드러나 상을 반납했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