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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온전한 집안

입력 | 2014-04-17 03:00:00


“아빠랑 이혼하고 우리끼리 살자.”

술 취한 아버지가 귀가하여 한바탕 소란을 떤 날, 대학생이 된 큰딸이 엄마에게 진지하게 제안했다. 경제력 없는 남편을 대신하여 열심히 삼남매의 뒷바라지를 한 엄마도 더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술이 깬 남편에게 집에서 나가 달라고 말했다. 자신의 실수를 아는 남편이 말없이 집을 나간 지 일주일 되던 날 엄마는 삼남매에게 다시 물었다.

“아빠랑 이혼할까?”

큰딸과 큰아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겨우 일곱 살이 된 막내아들에게도 물었다.

“너는?”

“엄마, 그냥 살아.”

어른스러운 막내의 한마디가 순간, 엄마의 화를 가라앉혔다. 우리 집안에 이혼한 사람 없으니 알아서 하라는 친정의 반응도 그녀를 주저앉혔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부지런히 일해서 삼남매를 대학까지 가르쳤고, 마침내 큰딸을 화목하고 점잖은 집안에 시집보내게 되었다.

“엄마, 이혼하지 않고 살아줘서 고마워요.”

시댁에 첫인사를 다녀온 날, 딸이 말했다. 시댁 어른들이 며느릿감의 인사를 받으면서 “우린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온전한 집안에서 잘 자란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만약 엄마가 이혼을 했다면 시댁 어른들이 바라는 유일한 조건인 ‘온전한 집안’의 딸이 되지 못할 뻔했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고, 엄마의 헌신이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분 역시 딸의 혼사를 진행하면서 참고 살길 잘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큰일을 치르자니 아빠의 자리가 작지 않았다. 하긴, 아빠만큼 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어느 집안이나 문제없는 집은 없고 온전한 가정에 대한 해석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이혼하지 않고 부득부득 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터. 그러나 만약 내 딸이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려고 할 때 ‘온전한 집안’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당한다면 어떨까.

자식 때문에 참고 산다는 옛말에도 일리가 있고, 참는 것만이 최선이 아니라는 작금의 상황에도 분명 일리는 있다. 다만 무엇이 최선인가에 대한 고민은 매우 깊고 신중해야 할 것이다. 참을 인(忍)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데, 요즘 세상이 이리 충동적이고 어지러운 것이 참을성 부족에서 기인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