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여객선 침몰 참사] 가족들 “정부 약속 하도 속아서요…” 朴대통령 “전화번호 주세요, 확인하죠”
“우리 얘기 좀 들어주세요” 17일 박근혜 대통령이 전남 진도 해상에 침몰한 세월호 사고 현장을 찾아 수색 구조 상황을 살펴본 뒤 진도체육관에서 탑승자 가족들의 요구사항을 듣고 있다. 진도=청와대사진기자단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 사고 이틀째인 17일 오후 구조작업이 지연되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는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했다.
새벽부터 “구조작업 속도가 느리다” “현장에 직접 가보니 수색 인력이 없다”며 분통을 터뜨리던 가족들은 오후 2시경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이곳에 와야 한다”고 주장하던 차였다.
“우리 애 좀 살려주세요. 물속에 살아있어요. 제발 꺼내주세요. 여러 명이 살아있대요. 한두 명이 아니에요.”
박 대통령은 “알겠다”며 가족들의 손을 붙잡고 위로했다. 내내 침통한 표정이었다.
“한숨도 못 주무셨을 텐데 얼마나 걱정이 크십니까. 뭐라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박 대통령이 단상에 오르자 박수가 쏟아졌다. 박 대통령은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자원과 인력을 동원해 수색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데 대해 철저한 조사와 원인 규명을 해 책임질 사람을 엄벌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단상에 선 박 대통령을 바라보고 앉은 800여 명의 가족과 관계자들은 손을 들어 질문을 시작했다. 진도 앞바다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장 구조 작업을 실시간 영상으로 볼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와 잠수부들이 왜 선체 안에 들어가 구조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박 대통령은 옆에 선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에게 확인한 뒤 “(실시간 영상) 시스템을 설치할 것이고 잠수부 투입은 끝까지 시도할 것”이라고 답했다. 김 청장이 마이크를 넘겨받아 “현재 잠수부 500여 명을 투입하고 있다”고 덧붙여 설명하자 가족들 사이에서 “거짓말!”이라는 고성과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동안 가족들은 직접 현장에 가 보면 투입된 잠수부 수가 적다고 답답함을 토로해 왔다.
사고현장 CCTV 요구하자 바로 설치 17일 오후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실시간으로 폐쇄회로(CC)TV로 사고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이 CCTV는 이날 현장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가족들이 건의한 뒤 즉시 설치됐다. 진도=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가족들이 “우리가 하도 속았어요. 제 휴대전화 번호를 가져가 전화 주세요. 그래서 주무시기 전에 오늘 한 약속이 잘 지켜졌는지 물어봐주세요”라고 요청하자 박 대통령은 선뜻 “네, 전화번호 주세요. 제가 확인하겠습니다”라며 휴대전화를 건네받았고, 다시 한 번 박수를 받았다.
30여 분간 대화를 나누고 박 대통령이 퇴장하기 위해 단상을 내려오자 “우리 아들이 안에 살아있어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가지 마세요”란 어머니들의 울음 섞인 비명이 다시 터져 나왔다. 부모와 오빠가 실종되고 홀로 구조된 권지연 양(5)이 단상 바로 앞에 앉아 있다 “가지 마”라고 울음을 터뜨리자 박 대통령은 무거운 표정으로 권 양에게 다가가 쓰다듬기도 했다.
이날 박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하는 것에 대해 청와대 참모들의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에 앞서 이날 0시경 이곳을 방문했던 정홍원 국무총리가 물세례를 받는 봉변을 당하는 등 현장 분위기가 매우 격앙돼 있었기 때문이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경호상 현장 상황이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말에 ‘안 가시면 어떤가’ 하는 의견도 있었으나 박 대통령은 ‘가기로 한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더이상 얘기하지 마세요’라고 했다”고 전했다. 실종자 가족들과의 대화 때도 김기춘 실장이 다소 만류했으나 박 대통령은 그대로 대화를 강행하는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