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눈에 찍히면 학위도 취업도 힘들어 취업 ‘바늘구멍’… 교수 채용에 억대 요구도 문화 바뀌고 있지만 실력으로 먹고살 날 왔으면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교수는 영원한 ‘슈퍼 갑’
―석·박사가 되려면 교수님 운전사처럼 일한다. 공연 의상 가져가고, 방 치우고, 꽃병에 물 채우고, 우편물 정리하는 식의 뒤치다꺼리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교수가 “너 이번에 박사 해볼래?”라고 말한다.(25·여)
―고교 때부터 진학하고픈 대학의 교수 집에 가서 거의 가사도우미처럼 일한 친구가 있다. 그러면 입시에서 좋은 점수를 준다. 대학에 입학만 하면, 나중에도 키워 준다. 중간에 맘에 안 든다고 지도교수를 바꾸면 매장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25·여)
―가르치는데 자기 스타일만 고집하는 교수들이 있다. 수업 듣다 보면 “너 누구 제자라고?”라며 비꼬는 교수가 있다. “너, 그거 누구한테 배워 왔냐?”고 말하기도 한다. 지도교수 외에 다른 교수에게 개인 레슨을 받는 것은 비밀로 해야 한다.(27)
―대학 등록금에 레슨비가 포함돼 있어 음대생은 교수에게 레슨을 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그걸 안 해주는 교수가 많다. “너 혼자 연습해”라고 말하고는 나가 버린다. 레슨 빼먹고 보충수업도 안 해준다. 한 학기 동안 레슨을 딱 1회 받고, 교수님 방 청소만 하다 나온 친구들도 있다.(25·여)
―미국에서 성악을 10년 이상 공부했다. 미국에서는 학생이 교수에게 굽실거릴 필요가 없다. 귀국한 후 학과장을 찾아갈 때 아무것도 안 사들고 갔다가 선배에게 “미국인 줄 아나? 큰일 난다”는 얘기를 들었다. 미국에선 당연한 게 여기선 비정상이다.(38·여·강사)
―교수님이 주관해 연주자로 참여한 학생은 교수님께 ‘감사비’ 명목으로 1인당 5만∼10만 원을 내는 게 관례다. 참여하는 학생 수에 따라 액수는 다르다. 음대는 등록금도 비싼데…. 1년에 감사비만 30만∼50만 원 든다.(25·여)
“연줄을 위한 노력은 숙명?”
―여기는 졸업해도 시장이 너무 좁기 때문에 졸업 후 취업을 생각하면 ‘연줄’을 무시할 수 없다. 성악과는 합창단이나 오페라단, 기악과는 오케스트라단 같은 곳에 들어가는데 교수님 친구가 오케스트라단 지휘자라거나 음악감독이면 도움이 된다. 그러니 교수에게 잘 보여야 한다.(24·여)
―오케스트라에 입단하기 위해 오케스트라 단원에게 개인 과외를 받기도 한다. 실력을 키운다는 측면도 있지만 미리 눈도장을 받기 위해서다. 사실 응시생들 실력은 비슷비슷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자신에게 레슨 받는 사람을 더 선호하지 않겠는가.(24·여)
―성악과를 졸업한 뒤의 진로가 항상 밝지는 않다. 해외 공연 계약이 잡히는 경우는 극소수다. 대개 프리랜서나 합창단원으로 공연한다. 몇몇은 교수나 강사로 나가는데, 이때 지금의 교수님과의 연줄이 굉장히 중요하다.(25)
―상위권 대학이 아닌 경우 교수나 강사로 취업하기는 어렵다. 강사나 교수들이 모두 자기 대학 출신만 끌어준다. 일부 국립대나 사립 명문대를 빼면 나머지 학교 출신은 타교에 교수 자리 잡는 게 쉽지 않다. 모교에서 강사 자리 얻는 것도 힘들다.(25·여)
―외국에서는 연줄이 없어도 실력 하나만 있으면 먹고살 수 있다. 우리나라는 공연 무대 자체가 적다. 공연에 오는 관객도 적다. 그럴 때는 교수가 나서서 관객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런 교수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25)
―작곡과 졸업생의 경우는 교수나 강사 외에 음악 치료사 같은 직업을 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격증이 공신력이 있는지, 자격증을 땄다고 해서 취업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고민하다 대학원 가는 게 의무처럼 돼 있다.(22·여)
―작곡과 졸업 예정자인데 취업만 생각하면 겁이 난다. 작곡만으론 먹고살기 어렵다. 선배들을 보면 합창단 작곡가로 활동하면서 따로 입시 레슨을 하거나 시간강사도 한다. 프리랜서라지만 고정 수입은 턱없이 적다.(24·여)
―피아노학과를 졸업했다. 어린이 합창단, 성인 중창단 같은 데서 전문 반주자로 일한다. 이 자리도 얻기 쉽지 않았다. 아는 사람 소개로 운 좋게 연결됐다. 내 전공 살려 일하기가 정말 어렵다.(26·여)
―안정적으로 임금을 주는 합창단은 소수다. 작은 공립 합창단이라 해도 경쟁률이 150 대 1 정도로 높다. 한 번에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각각 한두 명을 뽑는다. 최저 임금보다 낮은 월 9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 사람들도 많다.(25)
―음악은 빛 좋은 개살구다. 백조처럼 겉은 우아하지만 물밑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게 한국 음악계의 현실이다. 좁은 무대에서 경쟁하느라 예술인의 본질을 잃었다. 후배들이 졸업한 후에는 상황이 나아졌으면 좋겠다.(38·여·강사)
―인생은 예술고 때 결정된다. 서울예고나 선화예고 같은 학교가 엘리트 코스의 출발선이다. 일류 예고를 거쳐 유명 대학에 가고, 교수가 되는 게 최고 엘리트 코스다. 처음부터 그 코스에 못 들어가면 모두 들러리다.(23)
“대한민국 음대생의 쓸쓸한 자화상”
―일부 음대 교수들이 비싼 개인 레슨을 학생에게 강요하는 것은 분명 문제다. 하지만 음악가에게는 수업 외 레슨이 필수이기도 하다. 난 박사학위를 딴 지금도 레슨을 받는다. 레슨은 음악하려면 숙명이다.(38·여·강사)
―개인 레슨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 하루 10시간 넘게 연습해야 다음 날 실력이 는다. 한 시간 집중해서 레슨 받으면 10시간 이상 연습한 효과가 나온다. 그러니 학생이 먼저 원해 레슨을 받을 수밖에 없다.(25·여)
―음대의 경우 기본 등록금이 500만 원대다. 거기에 개인 레슨 비용만 한 번에 약 10만 원씩 들어간다. 음악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다. 돈이 있어야 길이 열린다.(23·여)
―전공자용 바이올린은 3000만 원 이상에 활 값만 100만 원이다. 입시 감독 교수나 오케스트라 단원 선발 관계자들은 악기 봐서 별로거나 하면 ‘쟤는 더 들어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레슨 받을 때마다 교수님들이 좋은 악기 구해 오라고 한다. 정말로 스트레스 받는다.(24·여)
―입학 초에는 군대에 왔는지 착각할 정도였다. 연습과 얼차려 시간이 비슷했다. 1학년 때, 과방 청소하라는 선배에게 동기가 “청소가 아니라 공부하러 왔다”고 했다가 1학년 전원이 소집됐다. 동기가 무릎 꿇고 빌어 해결됐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25)
―교수에게 얼굴을 안 비치고 석·박사 시험을 보면 90%는 안 된다고 봐야 한다. 심사 맡을 교수에게 레슨을 받거나, 돈이 없다면 다섯 번 정도는 찾아뵈어야 한다. 그냥 가면 반응이 굉장히 차갑다. 일부러 굉장히 무시하면서 무안을 주는 경우가 많다.(26·여)
“변화는 시작됐다”
―1학년 때는 1주일에 4번 정도, 3, 4시간씩 선배에게 기합을 받았다. 자살하고 싶기도 했다. 다행히 지금은 고압적인 분위기가 확 줄었다. 최근 바뀐 학과장이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음악 분야는 교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25)
―성악과의 경우 학생이 교수님 연주회 박수 부대가 된다거나, 교수님께 고가의 선물을 드려야 하는 문제가 종종 있었다. 선배들도 쉬쉬하기 때문에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여러 교수님들이 자정 노력을 한 덕분에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25)
―연줄 없다고, 돈 없다고 음악을 못하나? 아르바이트 열심히 다니며 공부하는 친구도 있다. 한 친구는 오전 3시까지 공부해 장학금을 탔다. 주말에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 뛰어 레슨비를 벌었다. 음악을 정말 좋아한다면 무슨 일이든 못하겠는가.(25·여)
―모든 교수가 먼저 선물을 요구하진 않는다.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돈을 걷는 게 더 문제다. 추가 레슨 때도 대가를 사양하는 교수님들이 더 많다. 그때도 학생들이 드리려 하기 때문에 받는 것이다. 학생부터 바뀌어야 한다.(26·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