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집 ‘오 해피데이’에 이런 단편이 있다. 한 샐러리맨이 아내와 별거에 들어간다. 텅 빈 아파트에 남겨진 남편은 집 안을 고급 오디오와 홈시어터, DVD, 옛날 음반, CD 등으로 채워놓는다. 회사 동료들이 몰려들면서 그의 집이 남자들의 놀이터가 된다. 한 사람이 말한다. “여자들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집 안을 꾸미지. 하지만 이 집의 좋은 점은 남을 위한 부분이 전혀 없다는 거야. 얼마나 편해.”
여자들은 거꾸로다. 남한테 보여줄 수도 없는 걸 왜 하느냐는 생각이다. 오디오나 홈시어터 같은 것들은 개인적 취향이다. 인테리어처럼 친구들을 초대해 탁월한 안목을 자랑하며 즐기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오디오 취미를 가진 여성을 발견하기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남들에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므로, 여성들끼리 통하는 취향은 십중팔구가 몸에 지닐 수 있는 것들이다. 또한 그런 취향을 관통하는 제1의 법칙은 ‘예쁘냐’다.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원하는 덕목을, 여자들은 자기 곁에 둘 물건들을 대상으로 갈망한다.
문제는 이런 장난감들이 아내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예쁘지도 않은, 특히 다른 여자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잡동사니에 공간을 빼앗기고 심지어는 걸리적거리는 것을 참지 못한다. 비슷비슷한 렌즈며 한 번 듣고 꽂아놓는 CD, 자리만 차지하는 책 더미가 짜증나는 것이다.
그들이 더욱 기분 나쁜 것은, 남편이 쓸데없는 것에 돈을 낭비하면서도 그녀가 원하는 예쁜 것들에는 인색하게 군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유행하는 선글라스나 팔찌, 가방, 옷, 구두 같은, 남편 관점에선 ‘다 있는데 뭘 또?’ 할 만한 것들이다. 이런 두 가지 요인이 그들을 분기탱천하게 만드는 순간, ‘뭐든 하지 못하게 하는 아내’가 탄생한다.
요즘의 남편들은 아내 무서운 줄 알아서 나름의 전략을 활용한다. 아내의 것을 먼저 사주면서 환심을 사는 것이다. 아내가 새 아이템을 어루만지며 즐거워할 때를 놓치지 않고 이렇게 물어본다. “기분 좋아? 그럼 내 것 하나만 사도 돼?”
많은 아내가 남편의 술책을 뻔히 알면서도 즐거운 마음에 고개를 끄덕여준다. 반면 어떤 아내들은 즐거운 기분을 과감히 포기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꿈도 꾸지 마.” 취향을 존중해주는 배우자를 만났다면 전생에 나라를 구한 덕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