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클린턴과 ‘찰떡궁합’… 부시와는 사사건건 충돌
김영삼(YS)과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93년 임기를 동시에 시작했다. 처음엔 손발이 잘 맞는 듯했다. 취미 역시 조깅으로 같았다. 1993년 7월 방한한 클린턴 대통령이 청와대 경내에서 김 대통령과 나란히 뛰는 모습은 한미 공조의 상징처럼 비쳤다. 하지만 북핵 위기와 대북 정밀타격(surgical strike) 시나리오, 이어진 제네바 합의에서 한국이 소외되면서 두 사람 사이는 크게 벌어졌다. 1995년 북한 잠수함의 강릉 침투사건 때는 격분한 YS가 미국과 사전 협의도 거부한 채 단독 군사행동을 강행하려다 클린턴으로부터 “한미동맹 성격이 바뀐 거냐”고 추궁 받는 등 갈등이 적지 않았다.
클린턴은 김대중 대통령(DJ)에게 깍듯한 예우로 대하고 자신의 평양 방문을 상의할 만큼 관계가 돈독했다. 하지만 뒤이어 취임한 대북 강경파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사사건건 한국과 부딪쳤다. 2001년 취임 후 첫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탄도미사일(ABM)조약을 지지한 것은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MD)체제를 반대한 것처럼 비쳐 큰 파장을 불렀다. 부시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DJ를 ‘이 양반(this man)’이라고 지칭한 것은 또 다른 설화를 야기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으로 속도를 내려던 한국 정부의 남북관계 구상은 2002년 10월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의혹을 제기한 데 이은 2차 북핵 위기 발생으로 차질을 빚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사상 처음으로 캠프 데이비드(미 대통령 별장)에 초대받는 등 부시 대통령과 인간적인 친밀감을 과시했지만 재임 기간이 1년밖에 겹치지 않았다. 이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에서 미국의 적극적인 협조를 받았지만 이는 정상끼리의 궁합 덕분이라기보다는 안보협력 차원의 성격이 컸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