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멈춰버린 안전시계] [1]대형사고 그렇게 당하고도… 정신 못차리는 대한민국
대형사고 왜 되풀이되나
○ 과거 대형 사건과 판박이
진도 여객선 침몰도 암초 충돌 등 불가항력적 원인이 아니라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과 같이 관련 규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서해훼리호도 정원(221명)을 141명이나 초과해 승객을 태우고 화물도 규정 이상으로 실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회항하다 침몰했다. 진도 여객선도 신고된 화물 적재량은 기준(3608t)을 지킨 것으로 알려졌지만 신고하지 않은 화물 등으로 기준을 초과했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관리 감독과 재난 대응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을 수용해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던 안전 관리 업무를 해양경찰청 등 1개 기관이 전담토록 했다. 또 승객 및 화물 적재량에 대한 사전 점검 및 감독을 철저히 하는 한편 사고 대응 매뉴얼도 구체적이고 단계적으로 마련해 신속한 대피가 가능토록 했고, 매뉴얼에 따른 모의 훈련도 상시적으로 실시해 재난 대응력을 높이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 대책은 서류 속 공염불에 그쳤다. 대형사고가 터진 직후 한동안은 모양새만 갖추다가 이내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던 것. 모의 훈련 역시 형식적으로 진행된 탓에 재난 대응력도 나아지지 않았다.
정부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건물과 대중교통의 사전 안전 점검을 철저히 하겠다고 했지만 이 역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올해 초 경북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지붕 붕괴 사고 역시 △부실 증축 공사 △안전 점검 미비 등 19년 전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과 원인이 똑같았다. 진도 여객선 역시 출항 전 안전 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고, 승객들에게 대피 교육도 제대로 실시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형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여러 차례 지적됐던 ‘단골 원인’들이 개선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대형 사고가 터진 뒤 부랴부랴 새 대책과 매뉴얼을 마련해도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또다시 사고로 이어지는 것. 규정을 지키지 않아 사고가 발생하고, 사고 발생 뒤 새롭게 마련한 재난 대응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수백 명이 목숨을 잃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제는 끊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재난 대응하는 ‘휴먼웨어’가 없다
정책이나 매뉴얼을 문서로 새로 만들어 배포하면 그만이라는 ‘페이퍼 플랜 신드롬’ 역시 원인으로 꼽힌다. 페이퍼 플랜 신드롬은 새 정책과 매뉴얼을 문서로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고, 그것이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는 고민하지 않는 것이다. 이재은 충북대 교수(행정학)는 “매뉴얼에 따라 반복적으로 훈련하더라도 사전에 짜인 시나리오대로 하기 때문에 재난 대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매뉴얼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연습이나 훈련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