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멈춰버린 안전시계] [2]청와대도 총리실도 갈팡질팡… 총체적 지휘 난맥상
침통한 총리 정홍원 국무총리(가운데)가 20일 전남 진도실내체육관 강당 내 사무실에서 실종자 가족 대표들과 면담한 뒤 어두운 표정으로 자리를 나서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정 총리가 구조 인력을 더 늘리고 합동분향소를 설치하는 등의 지원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세 번째로 현장을 방문한 정 총리는 17일 물세례를 받고 쫓겨났고, 20일 오전 1시경엔 “청와대로 가겠다”는 가족들을 만류하며 약 3시간 동안 대치하다 물러났다. 진도=이훈구 기자 ufo@donga.com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침몰 사고 수습 과정을 지켜본 국민들의 분노를 피해 가기 어려워 보인다. 박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강조했던 ‘국민 안전’ ‘부처 협업’ ‘투명한 정보 공개’의 구호가 공염불에 그쳤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화려한 구호만 난무해 온 박근혜 정부 경쟁력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월호 침몰 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20일 청와대로 가겠다고 나선 것은 사고현장에 차려진 ‘현장정부’를 믿지 못하겠다는 강한 불신의 표현이다. 사고 발생 5일째를 맞고 있는데도 승선인 수 발표조차 오락가락하는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국민적 거부다. 실종자가 구조자로 분류되는가 하면, 배에 타지도 않은 학생이 실종자 명단에 올라 있는 황당한 일이 반복되고 있지만 누구 하나 책임 있는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에 대한 비판이 쇄도하자 이번에는 기관마다 서로 발표를 미루는 ‘칸막이 치기’에 나섰다. 박 대통령이 부처별 업무보고 때 단골메뉴로 강조해온 부처 간 협업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안행부와 해양수산부, 해양경찰청 등이 엇박자를 내자 뒤늦게 정홍원 국무총리를 본부장으로 한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를 설치했지만 성난 민심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박 대통령은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이름까지 바꾸며 국민 안전을 강조했지만 실제 안행부에 안전 전문가가 제대로 있느냐는 지적마저 나온다. 중대본 구성 초기 혼선을 자초한 이경옥 안행부 2차관을 비롯해 중대본 구성원 가운데 안전 분야 경력을 쌓은 이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안전 분야의 전문가가 없는 상황에서 체계적인 현장 관리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거듭된 대통령 지시의 ‘공허한 울림’
청와대가 가장 아파하는 대목은 초기 박 대통령 메시지가 부정확하게 나왔다는 점이다. 사고 발생 직후 박 대통령은 “해경특공대를 투입해 선실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해서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사태를 오판한 것으로 판명됐다. 박 대통령이 사고 초기 상황을 제대로 보고받지 못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객선에 구조대가 진입한 것은 사고 발생 사흘 뒤였고 여전히 선체 진입을 통한 실종자 확인 작업은 더디다.
박 대통령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국민 안전과 관련한 지시를 내렸다. 지난해 3월 안행부의 업무보고 때는 “안행부가 각 부처와 민간에서 보유한 방재자원을 통합,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을 시급히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올해 2월 안행부 업무보고 때는 “안전수칙을 제대로 만들고, 그것을 안 지켰을 때 굉장한 책임을 느끼게 만드는 제도를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사고 발생 8일 전인 7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는 “재난 유형별로 3000개가 넘는 위기관리 매뉴얼이 있는데, 실제 위기 상황 시 매뉴얼대로 움직이는지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박 대통령의 이런 지시가 현장에서는 ‘쇠 귀에 경 읽기’ 식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