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전남 진도군 해상에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동아일보DB
윤연 전 해군작전사령관
군함이나 여객선이나 배가 출항하기 전에는 반드시 점검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필자는 현역 함장 시절 “출항은 바로 전투다”라고 장병들에게 강조했다. 일단 배가 출항하면 바다에는 많은 위험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출항 전 완벽한 준비태세는 중요하다. 세월호의 경우도 출항 전 승선 인원과 적재 화물은 이상이 없는지, 엔진 레이더 조타기 등 각종 항해 장비는 잘 돌아가는지, 기상은 문제없는지, 수없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선장은 출항 전 보고서도 제대로 작성하지 않고 제출했다.
뱃사람 기본 상식조차 안 지켜
필자는 현역시절 수송함(LST)에 근무할 때 수송선 안에 탑재된 탱크나 각종 장비들을 안전하게 고정시켰던 일이 생각난다. 높은 파도가 치거나 급박하게 선회할 때 발생하는 쏠림현상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는 자동차를 탈 때 안전벨트를 매는 것과 같은 일이다. 세월호의 참사는 탑재 장비가 튼튼하게 고정이 안 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또한 출항 전에는 반드시 출항 전 안전검사를 해야 하는데 누가 무엇을 조사했는지 모를 일이다.
필자도 현역 시절 맹골수도를 항해한 적이 있다. 맹골수도는 폭이 좁고 조류가 빨라 대형 선박이 잘 지나가는 항로가 아니다. 우리가 좁은 골목길을 운전할 때 속도를 낮추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가는 이유도 그만큼 좁은 길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선장은 선박이 이처럼 좁은 협수로를 항해할 때 반드시 선교(Bridge·배를 지휘하는 공간)에 위치해야 한다. 아울러 협수로 항해 시에는 타기 고장에 대비한 비상조타요원, 레이더, 조타수 등 증강된 협수로 항해 요원도 배치돼야 한다. 이것은 뱃사람의 기본 상식이다.
선장이 당시 항해를 책임지고 있던 26세 3등 항해사에게만 좁은 협수로 항해를 맡겼다니 이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당직 항해사 한 명의 판단이 탑승자들의 생사를 가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좁은 협수로에서 그것도 거의 최대속력으로 항해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항로상 위험한 물체가 발견되거나 변침 지점에서는 방향을 바꿔야 하는데 좁은 협수로에서는 운신의 폭이 좁기 때문이다. 공간이 넓은 외해에서 항해를 하면 문제될 게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흔히 공동운명체를 상징할 때 ‘같은 배를 탔다’고 말한다. 같은 배를 탄 이상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는 뜻이다. 그만큼 안전항해를 위해서는 선장, 승무원, 승객들이 일심동체가 돼야 한다. 그러나 세월호는 그렇지 못했다.
전쟁 중 지휘관이 도망간 격
군함이나 일반 선박이나 함장과 선장에게는 절대적 권한과 책임이 부여된다. 배가 육지를 벗어나 바다로 나가면 세상과 격리되어 있어 선장의 결심과 명령은 바로 법이다. 그래서 함장이나 선장은 그 배를 상징한다. 선장에게는 배의 안전을 위해 승조원들을 교육 훈련시킬 책임이 있다.
2년 전 지중해 크루즈 항해를 위해 ‘루이스 크리스털’호를 탄 적이 있다. 항구를 바로 출항한 후 3000여 명의 승객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배의 조난 시 탈출해야 하는 퇴선(退船)훈련이었다. 승객들은 자신의 침실에 배치된 구명 재킷을 입고 이동 통로를 확인하며 배에서 내릴 때 자신이 사용할 구명정을 확인하는 쉬운 훈련이었다. 모든 승객들도 질서 정연하게 즐거운 표정으로 훈련에 임했다. 이처럼 중요한 퇴선 훈련마저도 세월호는 안 했다.
선장의 임무 중 가장 중요한 일은 위기관리 능력이다. 배가 위태로울 때 모든 승객들은 선장의 판단에 따른다. 배가 기울어지고 물이 스며들 때, 퇴선 순간을 결정하는 사람도 선장이다. 그렇지만 세월호 선장은 자신의 책무를 포기하고 가장 먼저 배를 떠났다.
비상상황이 발생할 경우 전 승무원은 각자 지정된 위치에서 개인별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데 이들도 선장과 함께 어린 학생들을 팽개치고 퇴선했다. 전쟁 중 지휘관이 적의 포격으로 우군이 위태로울 때 부대를 지휘하지 않고 도망친 것과 같다. 천안함 함장을 보라! 천안함장은 칠흑같이 어둡고, 파도가 높은 바다에서 어뢰공격을 받아 곧바로 배가 동강 나 침몰되는 와중에서도 부하를 끝까지 지휘해 안전하게 퇴함시키지 않았던가.
사건이 발생하면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가 초동조치와 통합전력의 극대화다. 차제에 해난사고와 관련된 통합된 구조시스템의 효율적인 정비가 필요하다. 이제 남은 일은 실종자의 빠른 구조와 세월호를 건져내는 일이다. 사고 해역이 조류가 빠르고 수심이 깊어 단시간에 임무를 종료할 수 없다. 실종자를 찾아내고 배를 일으키는 일은 고도의 전문기술이 필요하고 위험이 뒤따른다. 천안함 구조 시 순직한 제2의 한주호 준위 같은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
바다는 지배하는 사람의 것
지금 우리 주변에는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사고가 너무 많다. 이제 국민들은 비행기, KTX, 선박들을 불안해서 더이상 탈 수 없다고 아우성이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안전 불감증의 중증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좀 더 강화된 행정력을 동원해 같은 참사가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바다에서 사고가 났다고 해서 바다를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국익을 위해 더 많은 크루즈선을 띄워 바다로, 세계로 블루오션을 항해해야 한다. 바다는 지배하는 사람의 것이다.
금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바다에 대한 국민들의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기대한다. 지금도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생환할 것을 고대하는 사고 가족에게 깊은 애도를 드리며, 구조 활동에 여념이 없는 구조대원들에게도 뜨거운 성원을 보낸다.
윤연 전 해군작전사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