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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신석호]세월호 참사를 보는 서구인들의 눈

입력 | 2014-04-21 03:00:00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세월호 참사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취재차 미국 동북부의 로드아일랜드 주를 방문하고 있을 때였다. 15일(현지 시간) 저녁 고교생을 가득 태운 배가 침몰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호텔 로비로 나가보니 미국인 투숙객 몇몇이 벽에 걸린 TV 앞에서 CNN 속보를 지켜보고 있었다. 한 중년 여성은 남편에게 기댄 채 한 손으로 입을 막으며 마치 자신의 자녀들이 배에 타고 있는 것처럼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이후 미국 언론들은 연일 세월호 침몰 관련 속보를 주요 국제 기사로 다루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토요일인 19일자 1면 제호 바로 아래에 이번 사고로 가족을 잃은 한 할머니의 절규하는 얼굴 사진을 클로즈업해 실었다. CNN은 진도 현지에서 벌어지는 구조 및 수색 작업을 생방송으로 내보내며 말레이시아 실종 여객기(편명 MH370) 수색 작업과 우크라이나 사태 등과 함께 하루 종일 톱뉴스로 보도했다.

승객을 내버려두고 먼저 배를 빠져나온 선장 이준석 씨(69) 등 선원 3명이 구속된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번 사건을 지켜보는 미국 언론과 서방인들의 관점은 대략 두 가지에 모아지고 있다. ‘보호받아야 할 청소년들과 보호해야 할 어른’의 구도로 보는 시각과 선장 등 선원이 의당 지켜야 할 국제법을 지키지 않은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건으로 보는 관점이다.

마이클 커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위원장은 17일 뉴욕 맨해튼 유엔본부에서 열린 비공개 북한인권회의에 참석해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와 가족들에게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했다. 그는 “희생된 학생들이 꿈꾸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나의 일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CNN 앵커들은 “선원들이 학생들에게 ‘자리를 떠나지 말라’고 말해 놓고 자신들은 배에서 탈출했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을 102년 전 영국 타이태닉호 침몰 당시 승객들을 대피시키고 자신은 배와 함께 수장된 선장 에드워드 스미스와 비교했고 2012년 승객들을 사지에 남겨두고 줄행랑을 친 이탈리아 코스타 콩코르디아호의 선장과 동일시했다.

방송에 등장한 해사법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 보호 의무를 규정한 국제법을 어겼다고 비난했다. 이들은 ‘해상인명안전협약(SOLAS)’ 등 국제협약을 거론하면서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 비상 상황에 대비해 충분한 훈련을 하고 적절한 장비를 운용해 승객들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당연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인들은 보호받아야 할 청소년들의 권리를 무엇보다 강조하고 약속과 계약을 어긴 상대방에게는 무자비할 정도의 대가를 강요한다.

또 미국인들은 이번 사건을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선진 대한민국’에서 일어나서도, 일어날 수도 없는 일로 여기는 게 분명해 보였다. 이 때문에 현지 교민들은 가수 싸이가 끌어올린 한류에 대한 호의와 북한을 품에 안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담대한 ‘통일 대박론’에 대한 미국인들의 좋은 평가가 이번 사건으로 빛이 바래는 것이 아닌지 안타깝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여기에 사고 수습 과정에서 정부의 무능과 실책들이 잇따라 부각되면서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을 총체적으로 다시 평가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 “한국의 위기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생존자 구조에 최선을 다하고 다시는 이런 불행한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책을 마련하는 데 모두의 마음과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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