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사설]“공무원 못 믿겠다”는 국민의 분노, 朴대통령 이제 알았나

입력 | 2014-04-22 03:00:00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오전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현장에 내려가 실종자 가족들을 만났더니 공무원들에 대한 불신이 너무나 컸다”며 “국민이 공무원을 불신하고 책임행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다면 그 책무를 소홀히 하는 것이고 그 자리에 있을 존재의 이유가 없다”고 공직사회를 질타했다.

그러나 어제 오후에도 진도 팽목항에 대한민국 정부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망자 명단을 내걸고 건져 올린 시신을 확인해 병원으로 이송하는 게 정부가 하는 일의 전부다. 컨트롤타워도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실종자 가족들이 머무르고 있는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정부 책임자는 가족들의 요구에 “검토해 보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생때같은 아들딸을 아직 찾지 못한 어머니들은 더이상 몸부림치지도 울부짖지도 않았다. 단원고 한 학부모는 “정부가 처음부터 아이들을 건질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이건 국가가 아니다. 청소년을 수장(水葬)시키는 나라를 어떻게 국가라고 부를 수 있느냐”고 체념한 듯 말했다. 안전행정부 송영철 감사관이 기념사진을 찍으려 했다는 사망자 명단 위에는 “사진을 찍지 말아주세요. 가족들이 원하지 않습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어제 긴급수석비서관회의에서 송 감사관의 사표를 즉각 수리하도록 조치했다지만 민심은 차갑다. 진도의 절규와 통곡이 이런 공무원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냉소로 바뀌는 모습이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고, 공직자는 바로 그 주인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공직자는 평상시는 물론이고 재난 같은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을 제1의 본분으로 삼아야 한다. 그들에게 국민의 피 같은 세금으로 봉급을 주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 공직자들의 자화상은 어떤가.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고 믿고 싶지만 국민을 섬기는 본분을 다하기보다 무사안일, 무책임, 복지부동(伏地不動)으로 적당히 일하는 흉내나 내면서 승진 같은 자신의 잇속만 챙기려는 공직자가 부지기수다. 박 대통령은 “자리 보전을 위해 눈치만 보는 공무원들은 반드시 퇴출시킬 것”이라고 경고했으나 국민은 어리둥절하다. 공직사회의 그런 모습을 매일 보고 듣고 겪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대통령 취임 1년 2개월이 다 돼서 알았다는 현실이 되레 놀랍다.

이번 참사만 해도 해경과 해양수산부 공무원들이 세금으로 봉급 받고 하는 직무를 철저히 해냈다면 예방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불과 두 달 전 세월호에 대한 특별 안전점검에서 그들은 선내 침수방지 장치 등 5개 문제점을 적발했으나 “조치했다”는 청해진해운 측의 말만 믿고 재점검을 하지 않았다. 침몰 시 자동으로 작동해야 할 구명벌이 제대로 작동되는지 점검 과정에서 그대로 넘어간 것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결국 구명벌 46개 중 실제 작동한 것은 1개에 불과했다.

선박 침몰로 인한 대형 인명사고는 거의 예외 없이 인간의 실수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있을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었지만 세월호 침몰 사고는 일어났다. 이후 박근혜 정부의 대응이 국민에게는 더 큰 ‘참사’로 보인다. 안행부, 해수부, 해경, 지방자치단체 등이 제각각 나서 대책본부가 10여 개나 생겼고 범부처 사고대책본부를 꾸리는 데만 59시간이 걸렸다. 박 대통령이 현장의 가족들을 만난 뒤에도 대책본부의 부실 대응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실종자 가족들이 “청와대로 가자”며 집단 항의시위를 벌였겠는가.

정부는 대형 재난이 터질 때마다 사전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고, 사후 대응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다짐했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에도 백서 발간을 통해 실종자 구조와 수색 지연, 정부기관 간 통합대응 부재, 상황보고의 부정확 등을 핵심 문제로 지적했다.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나타난 문제점들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과거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말만 번드르르하게 하면서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이 공직자들의 고질병인가.

박 대통령은 “사고의 단계 단계별로 철저하게 규명해서 무책임과 부조리, 잘못된 부분에 대해선 강력히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다음에도 팽목항은 자원봉사자와 실종자 가족들의 자치 정부였다. 외신 기자들이 속속 모여드는 현장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너무나 부끄럽고 초라했다. 어제 실종자 가족들은 대표 15명을 뽑아 구조 현장을 직접 둘러보도록 했다. 정부가 제대로 구조하고 있는지 눈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신뢰라는 사회 자본이 이곳에선 이미 무너져 내렸다. 민간 잠수부를 모집한다는 천막에 운니초등학교 3학년 배모 군이 “형 누나들 꼭 돌아오세요, 보고 싶어요”라고 적었다. 대통령이 얼마나 질책을 해야 우리 공무원들은 움직인다는 말인가.-진도 팽목항에서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