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14년전 생존자의 편지] ‘부일외고 수학여행 참사’ 생존자 김은진씨 호소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사흘째인 19일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김은진 씨가 게재한 글(위쪽)과 김 씨를 성원하는 댓글들. 김 씨는 본보에 편지 원문을 보내오면서 “많은 사람의 마음이 모여 언젠가는 안전체계가 갖춰지기 바랍니다”라고 밝혔다. 인터넷 화면 캡처
《 2000년 7월 14일 그는 단발머리를 하고 수학여행을 떠난 여고생이었습니다. 3박 4일 여행을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가던 길에 버스는 빗길에 미끄러져 추락한 뒤 6대의 승용차와 함께 전소했습니다. 순식간에 번진 화염 속에서 13명의 친구들은 영영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14년이 지나고 부일외국어고 수학여행 버스 참사 생존자인 김은진 씨(30)가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 그 친구와 가족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온 국민에게 간절히 호소하는 글을 보내왔습니다.》
저는 2000년 7월 14일 부일외고 수학여행 참사의 생존자 김은진입니다. 방금 오전에 일 끝내고 인터넷에 접속했더니 (안산 단원고) 교감선생님의 비보가 제일 먼저 보이네요. 멀리 타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만무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뉴스를 보면 마음이 저려오는데, 그렇다고 귀 닫고, 눈 감을 수도 없는 일이라서 계속 뉴스만 찾게 됩니다. 아는 게 없고,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어서, 구호품을 보내는 것 말고는 무능한 제가 이러쿵저러쿵 얘기하기도 죄스러워서 아픈 마음만 부여잡고,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이 겪고 있을 참담한 사건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감히 언급할 수도 없지만 그래도 유사한 고통을 아주 오래전에 그들 나이에 제가 겪었고, 차후 몇 년 몇 십 년 동안, 어쩌면 살아 숨 쉬는 평생이라는 기간 동안 그들이 견뎌야 할 고통의 무게를 제가 약소하나마 공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마디만 올립니다.
오래전, 저도 단발을 하고 교복을 입던 그날, 수학여행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달리던 버스들이 연쇄 추돌사고를 냈고, 화염에 휩싸인 친구들을 구해낼 수 없었습니다. 배 아파 낳은 자식의 사망 소식 뒤에 살아남은 부모들이 견뎌야 했던 처벌은 우울증과 이혼이었습니다. 스스로를 탓하고, 배우자를 책망하다, 결국 사망자 부모님 대부분이 이혼 또는 별거를 했고, 조부모님들은 손자, 손녀 사고 후 3년 사이로 많이들 돌아가셨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후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에게 잊혀지겠지요. 하지만 당사자 가족들이 겪어야 할 후폭풍은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바뀌어도 잠잠해지지 않습니다. 동생과 언니 오빠를 잃은 형과 아우들은 외로울 겁니다. 고통스러워하는 부모님을 볼 때마다 함께 슬픔에 잠기기도 하고, 감정이 격해지면 “내가 대신 죽었어야 엄마 아빠 마음이 덜 아팠겠지” 하며 어린 나이에 충분히 받지 못한 관심과 사랑이 그리울 겁니다. 모든 당사자에게 이런 참사는 처음이라 서로에게 실수를 할 거예요. 근데 모두가 취약한 상태라 평소라면 아무것도 아닌 말과 행동들이 비수가 되어 뇌리에 박힐 겁니다.
분노의 방향이 아직 외부일 때 전문가의 도움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타인에게 화를 내는 건 그 지속 기간이 매우 짧습니다. 정신없는 두어 달의 기간이 지나고, 외부에 분노하고 항의해도 어쩔 수 없음을 인식할 때 화의 방향이 내부로 향하게 됩니다. 분노할 땐 소리라도 치고,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합니다만, 스스로 책망하기 시작할 때부터는 입을 열지 않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스스로를 괴롭히다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단원고로 진학하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안산으로 이사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살아도 당신의 삶이 아닌 삶을 살게 됩니다.
목숨을 부지한 친구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피해 가족이 받는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아주 기나긴 시간이 소요됩니다. 많이 울 거예요. 저처럼 술을 많이 마셔 위 천공이 생길지도, 간헐적으로 생기는 행복감에도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기쁨을 온전히 만끽하지도 못합니다. 죄책감이 가져다주는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여정이 친구들 앞에 놓여 있습니다.
김은진 씨
저는, 사고를 당했으니 아픈 게 당연하고,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괜찮아 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절대 잊혀지지 않는 일들이 있습니다. 피가 나고 아물고 딱지가 되어 떨어져 나갔는데 그 흉터가 그대로 남아, 볼 때마다 열일곱 살 어린 내가, 그리고 이젠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내 친구들이 불쌍해서 눈물이 납니다. 치솟는 불길의 잔상이 망막에 맺히고, 검은 연기가 친구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 여전히 어제 일처럼 식은땀이 납니다. 아스팔트 위에 누워 구급차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울기만 하던 나는 내 나이의 앞자리가 두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그 누구 하나 지켜줄 수 없는 지금의 나에게도 화가 납니다.
‘이별’의 ‘원인’을 찾으려고 할 겁니다. 대한민국이 잘못을 했고, 여객선이 잘못을 했고, 선장이 잘못했다 탓할 겁니다. 바뀌는 게 없을 겁니다. 아프기만 할 겁니다. 책망할 원인을 찾다 찾다 결국에는 본인에게 귀인할 겁니다. 바다에 뛰어들지 못한 부모님들은 시간이 지나고, ‘진짜’ 뛰어들지 않았음에 괴로워하고 당신의 몸뚱이를 손바닥으로 주먹으로 칠 겁니다. 그러지 않게 해주세요. 살아남은 아이들은 친구들을 데려 나오지 않았음에 “자신은 평생 선한 존재가 될 수 없다”고 확정 지어 버릴 거예요. 내가 무언가를 이루고, 칭찬 받을 일을, 축하 받을 일을 이루어도, 나는 나만 도망친 비겁자라는 전제를 떨쳐버릴 수 없을 겁니다. 그러지 않게 해주세요. 내가 7월이 되면 스스로에게 벌을 주듯, 많은 아이들이 4월이 되면 봄을 즐길 수가 없을 겁니다.
대한민국이 잘못했다, 꼭 고개 숙여 사과해주세요. 외부를 탓할 때, 거기서 멈추게 해주세요. 책임자들이 책임을 피하면, 결국 남은 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 잘못뿐입니다. 생존자들과 남은 가족들이 절대 자신을 탓하게 하지 말아주세요.
유튜브를 통해 학부모님들과 생전 제 할머니를 연상시키는 한 할머님의 울음소리를 들었고, 일 하다 말고 화장실로 뛰어가 아주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그 소리치듯 우는 소리의 진동은 제게 있어 가장 잔혹했던 여름날의 악몽을 떠올리게 합니다. 진동은 제 온 피부를 덮고, 가시처럼 파고들어 가슴에 꽂힙니다. 왜 나를 살려주지 않았고, 왜 나를 데려 나가 주지 않았냐고. 왜 너만 살았냐고.
“사람이 숨쉬고 사는 게 일상이라서,
사람이 태어나는 것도 그리고 죽는 것도 그 일상 중에 한 부분이라서,
너를 보내는 것도 나에겐, 그리고 네 부모님껜 일상이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 기억은 절대 일상이 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을 동반하는 것이라서
17살이던 내가 27살이 되어도 나는 여전히 눈물이 나고…
나는 네가 보고 싶다.” (2010년 7월 14일 일기)
eunjin.kim.0827@gmail.com (제 e메일 주소입니다. 멀리 타국에 있어 손을 잡아줄 순 없지만 남은 가족과 생존한 아이들에게 언제든 힘이 되고 싶어 남깁니다.)
:: 부일외고 수학여행 참사 ::
2000년 7월 14일 오후 2시 40분경 경북 김천시 봉산면 경부고속도로 추풍령휴게소 부산 방향 하행선에서 부산 부일외국어고 1학년 학생들을 태운 수학여행 버스가 빗길에 멈춰 선 5t 트럭을 추돌했다. 이후 뒤따르던 관광버스 2대와 승용차 등이 연쇄 추돌했으며 당시 학생들을 태운 또 다른 버스는 이를 피하려다 15m 아래 언덕으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추돌 차량들이 전소하고 학생 13명 등 총 18명이 숨졌고 100여 명이 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