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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 얼마나 무서울까”… 희망의 끈 못놓은 엄마

입력 | 2014-04-23 03:00:00

[세월호 침몰/애끊는 가족들]




“제발…” 간절한 기도 침몰한 세월호에서 실종된 승객의 친척인 한 중년 여성이 22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부근에서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다(위쪽 사진). 이날 진도 실내체육관 옆 대한불교조계종 봉사단 천막에는 실종자 가족들이 무사 귀환을 바라며 적은 쪽지 30여 편이 걸렸다. 진도=AP 뉴시스·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사랑하는 ○○야! 춥고 어두운 곳에서 얼마나 떨고 있을까? 더 늦기 전에 엄마 품으로 돌아와 주렴. 엄마가 영원히 사랑해….”

봄바람에 하늘색 연두색 분홍색 메모지들이 나풀거렸다. ‘무사귀환’ ‘힘내! 조금만 더’ 등 자원봉사자들이 쓴 응원 메시지 속에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이 담겼다.

진도 세월호 침몰사고 일주일째인 22일, 실종자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 옆 대한불교조계종 봉사단 천막. 예불을 드리고 차를 마시는 이곳엔 실종자 가족들이 쓴 쪽지 30여 편이 알록달록하게 달렸다.

스님들은 21일 저녁 체육관 내를 돌아다니며 가족들에게 “한마디씩 적어 주세요”라며 쪽지를 받았다. 다른 가족들이 쓴 글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한 아버지는 빈 종이에 세 글자를 적었다. ‘김○○.’ 아들 이름이었다. 다시 펜을 움직였다. ‘살아 돌아오길 바란다.’ 한 어머니는 목에 건 딸의 사진을 비구니 스님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정말 이렇게 예쁜 딸은 없을 거예요. 너무 보고 싶어요.”

실종자 가족의 마음은 절절한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사랑하는 내 아들! 엄마 곁으로 빨리 돌아와 줘. 보고 싶다.’ ‘사랑하는 내 동생 ○○야. 어디에 꼭꼭 숨은 거야! 같이 놀기로 했잖아∼’ ‘○○아. 너무너무 보고 싶어 내 동생. 언니가 많이 사랑해.’ 그리워하는 대상은 달랐지만 ‘보고 싶다’는 마음은 모두 한마음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은 갈수록 낮아지는 상황. 이별을 암시하는 가슴 아픈 글도 눈에 띄었다. ‘늘 사랑하고 미안하다. 하늘나라에서도 행복해야 해. 천사 같은 우리 아들, 꼭 다시 만나자.’ 그 옆엔 여분의 종이를 얻어 딸의 사진을 붙여놓은 어머니의 글이 있었다. 얼굴 옆에 ‘V’자를 한 채 귀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여학생이었다. ‘내 딸 ○○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새끼!…이렇게 보내야 해서 미안하다. 늘 마음속에서 함께하자 아가야.’

이 글을 쓴 지 2시간여 뒤, 강당 앞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 선체 내부에서 나온 시신 인상착의가 떴다. ‘여성. 키 168cm. 윗니 금보철. 오른쪽 귀 피어싱. 2009.8.15라고 적힌 목걸이….’ 한 어머니가 벌떡 일어났다. “○○인 것 같아.” 차마 걸음을 떼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어머니를 언니와 딸이 부축해 신원확인소로 갔다.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드디어 오긴 했는데…. 이를 어떻게 해. 어떻게 (아이를) 봐…”라며 흐느꼈다. 그는 딸을 보기 위해 팽목항으로 갈 짐을 챙기면서 “각오는 했는데…각오는 했는데…”라고 반복했다. 아직은 딸의 죽음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22일까지 수습된 시신이 100구를 넘기면서 조계종 천막을 찾는 실종자 가족들의 발길도 늘었다. 자녀를 향한 그리움을 담은 다른 가족의 글귀를 보면서 많은 이들은 또 눈물을 흘렸다. 그러던 중에 한 아버지가 펜을 들어 간절한 기도를 적어 나갔다. “사랑하는 딸 ○○야. 무사히 우리 곁으로 돌아와 다오. 어서….”

진도=박성진 psjin@donga.com / 강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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