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사고상황 재구성] 조류 영향 감안 않고 미숙한 운항… 항적도 원본서도 확인
사고 당시 세월호의 조타기를 직접 돌렸던 조준기 씨(56·구속)가 해경에 진술한 내용이다. 조 씨는 배가 오른쪽으로 과도하게 꺾이자 균형을 맞추려고 뒤늦게 타를 왼쪽으로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배가 오른쪽으로 크게 돌면서 발생한 원심력으로 컨테이너 등 짐이 좌현으로 쏠려 기울기 시작한 상황이라 타를 왼쪽으로 돌려도 소용없었던 것이다.
동아일보가 22일 입수한 세월호 항적도 원본에는 초 단위로 배의 속력, 뱃머리 회전각도와 실제 회전각도 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뱃머리가 회전하면 곧이어 배가 그와 유사한 각도로 회전한다. 조류와 바람 등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꼭 뱃머리가 회전한 각도만큼 정확하게 배가 돌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배가 실제로 회전한 각도와 뱃머리 각도는 미세한 차이가 날 수 있어 조타수가 감각적으로 타를 돌려야 한다.
세월호 뱃머리 각도는 최대 49도까지 돌았다가 20초 뒤에 22도로 완화된다. 배가 지나치게 돌아가자 조 씨가 균형을 맞추기 위해 타를 왼쪽으로 크게 돌린 것이다. 하지만 이미 오른쪽으로 크게 회전해 발생한 원심력에 의해 컨테이너 등 화물이 좌현으로 쏠리며 배를 강타한 상황이라 타를 반대 방향으로 돌리는 게 무의미했다. 당시 브리지에 있던 선원들이 힐링펌프(배 좌우측에 설치된 물탱크로 배가 한쪽으로 기울면 반대편으로 물을 대거 이동시켜 수평을 유지하게 해주는 장치) 스위치를 눌렀지만 이미 평형수로 균형을 잡기엔 배가 너무 기운 상황이었다. 세월호는 점점 동력을 잃고 동그라미 형태로 돌고 있는 조류를 따라 북쪽으로 표류했다. 조타기를 급히 역방향으로 돌리는 바람에 유압(油壓) 차로 인해 엔진에 과부하가 걸려 멈춘 것으로 추정된다.
세월호는 이미 한 달 전에도 맹골수도를 지날 때 배가 심하게 회전해 휘청거린 적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등 항해사 김영호 씨(47·구속)는 한 달쯤 전 맹골수도를 항해하다 조류가 거세지자 힐링펌프를 가동시키면서 배 각도를 오른쪽으로 5도 정도 틀라고 지시했다. 당시 타를 잡고 있던 조타수 오모 씨(58)는 조류 저항을 감안해 타를 오른쪽으로 5도 조금 넘게 틀었는데 배가 갑자기 휘청거리며 왼쪽으로 기울었다고 한다.
당시 배가 크게 기울자 식당 조리실에 있던 그릇 등이 쏟아져 깨지고 선장을 비롯한 갑판부 선원들이 모두 브리지로 달려 왔었다고 한다. 다행히 배가 자체 복원력으로 균형을 찾았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오 씨는 “그 이후 맹골수도를 다닐 때마다 그때 일이 생각나 등골이 서늘하곤 했었다”고 말했다.
맹골수도에서 타를 잡아온 또 다른 조타수 박모 씨(60)는 “맹골수도는 협수로에 조류가 강한 곳이라 반응 속도가 느린 자동항법 대신 항해사와 조타수가 수동타법으로 직접 몰아야 한다”며 “조류가 동그라미 형태로 계속 강하게 돌기 때문에 배를 오른쪽으로 10도 꺾으려 한다면 15도를 틀어서 10도를 맞출 것인가, 20도를 틀어 맞출 것인가를 조타수가 감으로 판단해야 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박 씨는 “조타수는 영어로 쿼터마스터(Quarter master), 즉 ‘4분의 1 선장’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감이 있어야 하는데 조 씨가 타를 돌리는 감각이 부족해 사고를 냈다”며 “청해진해운은 돈을 아끼려고 종종 전문성이 떨어지는 조타수를 쓰곤 했는데 조 씨도 여객선을 모는 건 세월호가 처음이었던 걸로 안다”고 말했다.
목포=조동주 djc@donga.com·여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