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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곽도영]“나처럼 상처입지 않길” 김은진씨의 애절한 외침

입력 | 2014-04-23 03:00:00

[세월호 침몰/피해가족을 살펴라]




곽도영 기자

친구들이 아직 유리창 안에 남아 있었다. “엄마” “살려줘” 창문을 두드리며 비명을 질렀다. 16세 여고생은 창을 깨고 친구들을 꺼내기 위해 손에 잡히는 것으로 닥치는 대로 내려찍었다.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사방은 참혹했다. 부모들은 혼절했고 기자들은 질문을 쏟아냈다. 살아남은 아이들은 침대에서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며 눈물만 흘렸다.

2000년 7월 14일의 기록이다. 부일외국어고 수학여행 버스 참사는 13명의 아이를 앗아갔지만 악몽은 또다시 반복됐다.

16세이던 여고생 김은진 양은 30세가 됐다. 그는 지금도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살아있다는 사실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21일 그는 어렵게 쓴 편지를 전하며 “정말로 진도에 있는 부모님들께 도움이 될까요?”라고 여러 번 되물었다. “개인 e메일 주소를 공개하는 것은 위험할지도 모른다. 나쁜 사람들이 어긋난 글을 보낼지도 모른다”는 기자의 우려에 그는 “괜찮습니다. 생존한 학생들과 부모님들에게 필요할 때 편지로나마 꼭 힘이 되어주고 싶어 남긴 주소입니다”라고 했다. 그는 타국에 있었다. 가혹한 말들이 아픈 이들의 상처를 두 번 후벼 파는, 일그러진 이곳에서 기자는 부끄러웠다.

14년 전 그가 산소 호흡기를 매달고 병원으로 실려 갔을 때 기자들은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고 했다. 일일이 답해주다 고통스러웠던 그가 “쉬고 싶다”고 했을 때 한 기자는 그에게 “너는 대답할 의무가 있고, 난 국민에게 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호통치듯 말했다. 한쪽 다리가 부러졌던 같은 반 친구는 옆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다가 외발로 뛰어와 기자가 들고 있던 카메라를 집어 던졌다고 했다.

꽃잎 같은 이들을 바다 한가운데서 잃어버린 지 일주일이 지났다. 대한민국은 또다시 16세 여고생 김은진 양을 양산해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안산과 진도, 목포에서, 그리고 인터넷을 촉수 삼은 전국 곳곳에서 “너는 대답할 의무가 있다”고 잔인하게 ‘호통’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리저리 비난의 화살을 돌리며 뒤에 남겨진 가족들과 아이들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김은진 씨가 화염 속 고통스러운 기억을 되짚으면서도 기자에게 남긴 것은 앞으로도 긴 터널을 함께 지나야 할 이들을 보듬어 달라는 호소였다. 긴 시간이 지난 뒤 남은 화살을 스스로에게 돌릴 수밖에 없을 남겨진 이들을 위한 기도였다.

곽도영·사회부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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