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스포츠레저전문기자
돈에 미쳐 돌아가는 천민자본주의 나라, 기본이 없는 반칙과 야만의 나라, 겉만 번지르르한 나라, 사람을 우습게 아는 나라, 남을 짓밟고라도 나만 잘살면 되는 나라, 책임질 사람들이 맨 먼저 도망가는 나라,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일수록 더 염치없고 뻔뻔한 나라….
슬픔은 돌로 눌러놓아도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명자꽃이 붉게 피어도, 복사꽃 살구꽃 아무리 화사해도 시들하다. 소득 3만 달러면 뭐하고, 정보기술(IT) 강국 최첨단 기술을 아무리 자랑하면 뭐하나. 식당마다 사람들이 두세두세 밥을 먹는다. 생때같은 아이들을 저렇게 만들어 놓고도 젓가락질 손은 반찬 그릇으로 뻗친다.
‘나이 쉰다섯에 과수가 된 하동댁이/남편을 산에 묻고 땅을 치며 돌아오니/여든둘 시어머니가 문에 섰다 하시는 말’
밥벌이의 고단함. 이 땅의 어른들은 ‘죄 많은 인생’이다. 식구들 밥 굶기지 않겠다고 죽자 사자 일만 했다. 앞뒤 안 가리고 머리를 들이밀었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게 말짱 헛것이었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었다. 밥줄에 매여 살다 보니 구차하다 못해 비루해졌다.
전북 진안 마령초등학교 담장 옆에는 수백 년 된 이팝나무(천연기념물 제214호)가 서있다. 먹을 게 없어 굶어죽은 아이가 수두룩했던 시절, 아버지들은 아이들 무덤 위에 하나같이 쌀밥나무(이팝나무)를 심었다. ‘저승에서나마 맘껏 쌀밥을 먹으라’는 아비들의 피눈물로 아기무덤을 만들었다. 한때 마을숲을 이룰 정도로 많았지만 이젠 7그루만 남아 해마다 이맘때쯤 하얀 꽃을 다발로 피운다.
그렇다. 1960, 70년대만 해도 우리에겐 인간의 도리랄까, 품위가 있었다. 가난했지만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조선시대 아버지들은 비록 식구들 밥은 제대로 못 먹였는지 모르지만, 인간의 예의나 염치까지 잃지는 않았다. ‘아기사리’로 다시 피어난 이팝나무꽃은 바로 그 아비들의 ‘꽃심’이나 다름없었다.
요즘 ‘밥’ 굶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이 먹는 밥에 ‘수라’니 ‘입시’니 ‘구메밥’이니 하는 말도 더이상 붙지 않는다. 아무리 부자라도 한 끼에 두세 그릇 먹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하나같이 ‘좀 더, 조금만 더’를 외치며 밥에 목을 맨다. 간과 쓸개까지 내팽개치고 ‘밥줄’에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아궁이에서 굴뚝까지는/입에서 똥구멍까지의/길/비좁고,/컴컴하고,/뜨겁고,/진절머리 나며,/시작과 끝이 오목한 길/무엇이든지 그 길을 빠져나오려면/오장육부가 새카매지도록/속이 타야한다/그래야 세상의 밑바닥에 닿는다, 겨우’ (안도현의 ‘굴뚝’ 전문)
사람의 창자는 하나의 생산라인이다. 입과 항문은 인풋(input)과 아웃풋(output)일 뿐이다. 인간과 지렁이의 생산라인이 하나도 다를 게 없다. 밥은 곧 똥이다. 밥이 식도를 타고 흘러내려가 항문에 이르면 똥이다. 사람은 짐승과 뭐가 다른가. 그것은 아마도 ‘사람의 향기’ 같은 것 아닐까. ‘사람만의 도타운 정’ ‘인간의 품격’ 같은 것 아닐까.
사람의 삶에 무슨 정답이 있겠는가. 어떻게 살든 저마다 옳다. 각자의 삶은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사람다워야 사람이다. 어른은 어른답고, 선장은 선장다워야 한다. 오직 ‘밥’이 목표라면, 그것은 자벌레의 생산라인과 뭐가 다른가.
김화성 스포츠레저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