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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성희]수학여행 폐지론

입력 | 2014-04-23 03:00:00


교육부가 안전 문제로 1학기 각급 학교 수학여행을 전면 중지시켰다. 차가운 바닷물에 갇혀 있을 단원고 학생과 고통 받는 가족을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 자식만 수학여행을 보내기도 어렵다. 그러나 수학여행을 몹시 기다리던 아이들의 실망이 큰 것 같다. 관광업계의 타격도 크다. 인터넷에서는 “세월호 사건은 안타깝지만 수학여행이 무슨 죄가 있느냐”며 수학여행 폐지 반대 서명도 벌어진다.

▷과거에 여행은 ‘사치재’였다. 마을 경계선을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시절, 수학여행은 가족의 품을 떠나 우리 자연과 국토를 체험하고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는 드문 기회였다. 필자도 고등학교 때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다. 난생처음 여행이었다. 그때 보았던 첨성대와 온종일 들었던 아바 음악이 기억에 생생하다. 지방 출신들은 수학여행 때 서울을 찾아 창경원(현 창경궁)과 남산을 둘러본 추억을 곱게 간직하고 있다.

▷요즘에는 여행 기회가 많아져 굳이 수학여행을 갈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이 나온다. 그래도 역시 수학여행은 일반 여행과는 다르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공부에 찌든 일상으로부터의 ‘합법적 일탈’의 성격을 갖고 있다. 아이들이 교사의 눈을 피해 술 담배에 손을 대고 밤새 고성방가(高聲放歌)를 하는 일탈도 있다. 음주 폭력 따돌림과 같은 사고도 적잖게 일어난다. 되돌아보면 기성세대의 수학여행도 비슷했다. 학교와 교육당국은 사고 예방에 각별히 신경을 쓸 일이다.

▷수학여행에선 학생들이 단체로 움직이다 보니 한번 사고가 나면 규모가 커지게 되어 있다. 이번 세월호 참사 이전에도 2000년 강원도 일대와 용인 에버랜드 등을 둘러보는 수학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던 부산 부일외국어고 학생들이 탄 버스가 추풍령에서 추돌사고를 일으켜 학생 13명이 숨지고 100여 명이 다쳤다. 하지만 정부가 수학여행을 금지시킨다고 해서 학생들의 집단 안전사고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도, 사설 해병대캠프에서도 사고는 일어났다. 선진국은 수학여행을 없애고 단기체험을 강화하는 쪽으로 전환하고 있다. 우리도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