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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문병기]세월호와 네 번의 기회

입력 | 2014-04-24 03:00:00


문병기 경제부 기자

가슴이 먹먹하다. 분노가 치밀다 슬퍼지고 다시 무기력해진다. 먼발치에서조차 세월호가 빚어낸 그 참담한 비극을 감당하기 버겁다.

인터넷에 올라온 안산 단원고 2학년 교실 사진을 본 뒤에는 더욱 그랬다. 사진 속 교실 창문과 복도의 벽은 실종된 친구, 선생님들을 그리워하는 글이 적힌 노랑, 초록 색종이들로 빼곡히 채워졌다. 펄럭이는 노란 손수건들로 뒤덮인 참나무가 떠올랐다. 하지만 색종이를 붙인 모든 이들이 노란손수건 이야기처럼 해피엔딩을 맞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비참한 현실에 눈물이 차올랐다.

세월호가 머릿속에 맴돌 때마다 ‘만약에’란 가정을 하게 된다. ‘44개의 구명정이 다 펼쳐졌다면?’, ‘선장이 승객들에게 제때 탈출 안내를 했다면?’ 그랬다면 더 많은 사람이 탈출에 성공하지 않았을까? 아니 세월호에 대한 안전점검만 제대로 됐다면 아예 이번 참사가 없지 않았을까?

현재 여객선의 안전관리는 여러 기관이 나눠 맡고 있다. 해운사는 선박을 개조하기 전에 설계도를 제출해 안전승인을 받아야 한다. 안전검사도 매년 한 차례씩 중간검사, 5년에 한 번씩 정기검사를 받아야 한다. 명절 성수기나 안개가 짙은 농무기에는 해양경찰청의 특별점검을 받고 출항 직전에도 안전규정을 지켰는지 검사를 받는다.

해양수산부는 선박 정기점검을 한국선급에, 출항 전 점검은 한국해운조합에 위탁하고 있다. 단계별로 꽉 짜여진 안전검사 제도는 세월호 사고원인들로 꼽히는 부실증축, 화물과적 등이 사전에 적발되지 않은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다.

돌이켜보면 이 안전점검 기관들이 세월호 참사를 막을 기회는 네 차례나 있었다. 청해진해운이 노후선박인 세월호를 일본에서 사들여 무리하게 증축했던 지난해 1월이 첫 번째 기회였다. 청해진해운은 세월호를 증축하는 대신 화물적재량을 비현실적으로 줄여 안전성을 높이겠다고 신고했는데도 한국선급은 별 지적 없이 이를 승인해줬다.

올해 2월 한국선급의 중간점검과 해경의 특별점검도 다른 기회였다. 특히 해경은 세월호의 안전 문제점을 5개나 발견하고도 청해진해운이 문제를 보완했다는 문서를 제출하자 사후 확인조치 없이 특별점검을 통과시켰다.

마지막 기회는 출항 전 안전점검이었다. 세월호가 기준을 넘겨 화물을 싣고 이를 제대로 고정하지 않았는데도 해운조합은 세월호를 출항시켰다.

선박 안전점검을 맡은 기관 어디 하나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셈이다. 이런 직무유기가 벌어진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해수부 마피아’가 장악한 해운 산업을 꼽는다. 안전점검을 맡은 한국선급과 해운조합은 민간기구지만 두 곳 모두 해수부 퇴직 관료들이 낙하산으로 재취업하는 대표적인 해수부 외곽 조직이다.

세월호 참사 후 정부와 정치권은 뒤늦게 이런 유착 관계를 청산하겠다고 나섰다. 모쪼록 정부와 정치권의 대책이 성과를 내주길 기대한다. 이제 와서 세월호의 비극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문병기 경제부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