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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 긴급전화 122’ 홍보만 됐더라도…

입력 | 2014-04-24 03:00:00

[세월호 침몰]
예산 퍼부은 방재시스템, 정작 필요한 때 무용지물




진도 여객선 침몰 상황을 가장 먼저 접수한 건 해경이 ‘1초라도 더 빨리 사고를 접수해 인명을 구조하겠다’며 43억 원을 들여 만든 해상긴급 특수번호 ‘122’가 아니라 ‘119’였다. 122로 전화를 걸면 해경 긴급상황실이나 관할 해양경찰서로 직접 연결돼 비상 상황과 위치를 알릴 수 있고, 122 해양경찰구조대가 출동해 시간을 크게 절약할 수 있지만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7일 오전 8시 52분 32초. 세월호가 침몰할 때 최초로 신고한 안산 단원고 학생은 ‘119’에 전화를 걸었다. 전남소방본부 119 상황실은 “배가 침몰한다”는 학생의 말에 1분 35초간 사고 상황과 배 이름을 물은 뒤 이를 목포해경 122 담당자에게 연결했다. 이후 119 직원은 해경에 31초간 신고 내용을 전달했다. 8시 54분 38초가 돼서야 학생-119 상황실-해경 간 3자 대화가 시작됐지만 해경은 119 대원이 물었던 것을 반복했고 학생이 알기 어려운 ‘위도-경도’ 얘기를 꺼냈다. 1초가 급한 상황에서 학생의 신고가 119에서 해경으로 건너 전달되느라 아까운 시간을 허비한 것이다. 122에 신고하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나 기지국 정보를 받아 사고 위치도 즉각 파악되지만 119를 거치면 해경은 위치를 119에서 전달받거나 신고자에게 처음부터 다시 확인해야 한다.

이런 문제점을 방지하기 위해 해경은 2007년부터 해상긴급 특수번호 ‘122’를 부여받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후 대외 홍보비 등 사업비만 해도 2011년 10억8400만 원, 2012년 7억3000만 원 등 최근 5년간 총 43억 원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해경은 “해양에서 긴급한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국민들이 쉽게 기억할 수 있는 통합 신고접수 창구가 없어 119 등 육상 중심 구조기관에 신고된 다음에 해양경찰에 전달되거나, 심지어 114로 해양경찰서 전화번호를 문의해 뒤늦게 신고하는 일이 벌어진다”며 “122를 통해 1초라도 빨리 인명을 구조하겠다”고 도입 의도를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인지도와 활용도가 낮아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무용지물’로 지적돼 왔다. 2009∼2013년 해경이 122번호로 접수한 전화 건수는 5만3190건. 이 전화의 목적에 맞는 ‘긴급상황’으로 분류된 사고 접수는 4481건(2.2%)에 불과했다. 단순 안내접수가 4만1927건(20.3%)으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민원접수가 3684건(1.8%), 범죄접수가 2325건(1.1%) 등으로 나타났다.

해상긴급 특수번호 122는 물론 아직까지 대부분의 해상긴급 전화를 처리하는 119 모두 해상 긴급상황 신고에 대한 마땅한 접수 매뉴얼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해경 관계자는 “신고자나 사고 유형에 따라 사건을 달리 접수하는 매뉴얼은 없다”고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세월호 최초 신고접수 내용에서 보듯 일반 승객에게 ‘경도와 위도’를 묻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얼마든지 되풀이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2년 전 수원에서 발생한 오원춘 사건과 세월호 사고를 비교하며 비판하고 있다. 오원춘 사건 당시 피해자가 112 신고를 했으나 경찰이 신고자의 질문을 반복하는 등 부적절한 대응으로 80초간 시간을 낭비해 물의를 빚었다. 이후 경찰은 상황별 접수 요령을 구체화한 ‘112 신고 대응 매뉴얼’을 마련했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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