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일(1958∼ )
버스를 잘못 내렸네 장지동은 모르는 곳
입이 없고 커다란 모자를 눌러쓴 사람이 내 몸에 모르는 물건을 놓고 나간 듯 신열이 나고 개망초 꽃이 보였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고
머리칼이 하얀 남자가 상점에서 라면을 끓이고 있었네
칠십 년대식으로 사이다를 샀네 나는 이미 사라진
풀벌레 소리인가 아마존의
주인 없는 미나리 밭으로 두 시간 걸어온 걸까
시계가 고장 나 지구별에 늦게 도착한 고양이의 신음 소리를 냈네
나 장지동에 잘못 왔네 라면을 먹지 않았네
내 몸은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이 다녀간 곳
장지동에 가야겠네 그곳은 한없이 가다가 개망초 앞에서 멈추는 곳
나도 모르는 사이
사라진 시간을 찾아서 지우고 와야겠네
서울 송파구 장지동에 나도 한 번 가 본 적이 있다. 강북 구시가에 사는 내게는 멀기도 멀더라. 서울이 엄청 넓어졌다. 늦은 밤에 버스에서 잠들었다가 버스기사가 흔들어 깨울 때야 눈을 뜬다면 여간 난감하지 않을 테다. 택시요금이 꽤 나올 테다. 한남동이나 마포가 버스 종점인 시절이었다면 집까지 걸어갈 수도 있으련만. 다행히도 화자는 한낮에 버스에서 잘못 내렸다.
졸지에 모르는 동네, 그것도 개망초 꽃 핀 공터며 ‘머리칼이 하얀 남자가 라면을 끓이고 있는’ 구멍가게가 있는 한적한 옛날 동네에 떨어진 화자는 어리둥절하고 막막하다. ‘입이 없고 커다란 모자를 눌러쓴 사람이 내 몸에 모르는 물건을 놓고 나간 듯 신열이’ 난단다. 여기가 어딘가요? 이건 70년대 아닌가? 화자가 모르는 새 뚫고 지나온 시간의 막이 기이한 감촉으로 휘어지는 듯하다. 그렇거나 말거나 여긴 목적지가 아니지. 화자는 사이다 한 병 사서 마시고 장지동을 벗어난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예사로운 일을 시인은 예사롭지 않은 사건으로 기발하게 펼쳐 보인다. 최호일은 일상을 날선 감각으로 집요하게, 그러나 유유히 음미하며 낯설게 하는 재능을 타고난 듯한 시인이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