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재난의 컨트롤타워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것은 듣는 사람의 귀를 의심하게 만든다. 청와대가 재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발뺌한 셈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해 온 박근혜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핵심 참모의 인식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지 실망스럽다. 그가 책임자가 아니라면 청와대 내에서 누가 이번 사고를 책임지고 지휘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김 실장의 발언을 전하며 “국가안보실의 역할은 통일 안보 정보 국방의 컨트롤타워”라고 말했다. 또 “재난 상황에 대해서도 정보를 빨리 알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는 만큼 그런 상황을 확인해 관련 수석실에 뿌리는 게 안보실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김 실장은 안보 문제를 주로 다루지, 국가 재난 문제에는 비켜서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지난해 4월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출범한 직후 역할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자 청와대는 “재난 등 전통적 의미의 국가위기 관리와 관련해서도 24시간 모니터링 체제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국가안보실 산하의 위기관리센터가 관리하는 매뉴얼에는 국가안보 관련 14개 이외에도 재난과 관련한 15개가 포함되어 있다. 김 실장은 자신이 맡고 있는 부서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김 실장의 발언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원내대표는 “청와대는 무한 책임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질타했다. 우원식 최고위원은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겠다”고 비꼬았다. 국민의 시각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파문이 커지자 청와대는 뒤늦게 수습에 나섰지만 더 큰 불신을 사게 됐다.
박 대통령이 “현재 정부 내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있으나 위기 시 통일된 대응이 이뤄지려면 더 강력한 재난 대응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밝힌 것은 지금 시스템으로는 세월호 사고 같은 재난에 적절히 대처할 수 없음을 박 대통령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이번처럼 전대미문의 사고가 발생할 경우 모든 정부 부처가 청와대의 눈치를 보는 판에 청와대가 수동적으로 대처하는 현재의 시스템이 효율적일 수 없다.
노무현 정부 땐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서 안보와 재난을 함께 챙겼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가 폐지되면서 재난 관련 기능은 각 부처로 이관됐다. NSC 사무처는 지난해 부활됐지만 청와대는 재난 대응엔 사실상 손을 놓은 셈이다. 참여정부 때 청와대가 만든 위기관리 매뉴얼도 이명박 정부가 소관 부처로 내려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부처가 통폐합되는 과정에서 없어진 것들도 있을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재난 대응 시스템과 매뉴얼이 바뀐다면 공무원들이 그 내용을 숙지하고, 유사시 일사불란하게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22일 국무회의에서 “혁명적 발상으로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을 조속히 수립하라”고 지시했지만 믿음직스럽지 않다. 2월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 사고 후에도 정 총리와 내각,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안전 대한민국을 위한 다짐’을 했지만 말뿐이었다.
청와대가 이번 사고를 계기로 국가 개조 수준의 시스템 혁신을 추진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국가 재난 컨트롤타워의 기능을 청와대가 직접 맡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어느 것이 최선인지 충분한 논의를 거쳐 이번에야말로 정권과 상관없이 지속될 수 있는 재난 대응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