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22대 왕 정조와 조선 개국 공신 정도전 등 역사 속 실존 인물을 다양한 콘텐츠로 재조명하는 대중문화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사진은 정조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역린’(왼쪽)과 KBS 1TV 대하사극 ‘정도전’. 사진제공|초이스컷픽쳐스·KBS
■ 대중문화콘텐츠 역사 재조명 붐
혁명가 ‘정도전’ 돌풍…시청률 20% 육박
뒤이은 방송 ‘역사저널 그날’도 함께 인기
스크린서 개혁의 왕 정조 그린 ‘역린’ 화제
30일 개봉 앞두고 예매율 벌써 43%나 넘어
선과 악의 공존…현실 맞물려 공감대 형성
영국의 외교관 출신 정치학자이자 역사가인 E·H 카의 말이다. 그는 “과거는 현재의 빛에 의해 비쳐졌을 때에만 비로소 이해될 수 있으며, 현재도 과거의 조명 속에서만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이상 ‘역사란 무엇인가’)고 덧붙였다. 역사(혹은 역사적 사실)를 해석하고 들여다보는 관점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이 유명한 그래서 더욱 진부한 명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현재는 지나간 과거의 역사에 기대 지금의 얼굴을 들여다보게 한다. 새롭게 다가올 미래를 그려가는 데 또 하나의 교훈이기도 하다.
역사적 ‘사실(事實 혹은 史實)’을 재구성해 새로운 메시지와 교훈을 찾아가는 일, 드라마와 영화 등 대중문화 콘텐츠가 나섰다. 이제 ‘역사’는 대중의 가장 가까운 곳에 와 닿아 있다.
● 정도전·정조…, 그리고 조선의 왕(王)들
현재 지나간 역사를 그리는 드라마의 대표적인 작품은 KBS 1TV 대하드라마 ‘정도전’이다. 고려 말 권문세가와 관료들의 부정부패 그리고 혼탁한 국제정세 속에서 새로운 나라를 꿈꾸는 사대부 정도전은 ‘실패한 개혁’을 뒤엎는 ‘혁명’을 꿈꾸며 그 선두에 장군 이성계를 앞세운다. 드라마는 26일 방송분부터 서서히 이들이 새로운 나라를 세워가는 과정을 본격적으로 또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드라마는 시청률 20%에 가까운 수치로 주말 밤 시청자를 TV 앞으로 끌어 모으고 있다.
스크린에선 30일 이제 즉위 1년째를 맞는 조선 22대 왕 정조가 보내는 절체절명의 하루가 펼쳐진다. 영화 ‘역린’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뒤주 속에서 굶어 죽게 한 뒤 기득권을 지키려 신권의 확대를 노리는 노론벽파의 암살 위협에 맞서는 스물다섯 나이의 개혁적 젊은 왕 이야기다. 1777년 7월28일 밤, 서고이자 침전인 존현각 지붕 위에서 난 정체 모를 소리를 추적한 끝에 암살 음모를 밝혀낸 ‘정유역변’이라는 사실(史實)에 기반한다. 영화는 아직 개봉 전이지만 27일 오후 4시30분 현재 42.7%의 예매율로 1위에 오르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메이징 스파이어맨2’의 기세를 누르고 있다.
● 역사와 인간의 사이
영화 ‘역린’의 이재규 감독은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조차 힘들었을 상황에 놓였던 왕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고통 속에서도 긍정적이고, 더 밝아질 미래를 꿈꾸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갔던 사람의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이를 통해 “내 자신의 삶도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물었다.
어쩌면 ‘정도전’과 ‘역린’ 그리고 ‘역사저널 그날’을 통해 대중의 곁에 가까이 온 역사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정도전’의 조재현은 “고려 말기와 현 시대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고, 그때처럼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낮다는 점에서 시청자가 공감하는 것 같다”는 말을 내놓았다. 극중 죽어간 이인임 역의 박영규는 드라마가 “선과 악이 세상을 유지시키는 힘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트위터 @tadada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