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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리포트]‘일사불란 90초’ 300명 구해… ‘갈팡질팡 99분’ 302명 잃어

입력 | 2014-04-28 03:00:00

[세월호 참사/‘안전 대한민국’ 이렇게 만들자]<1>골든타임 다시는 놓치지 말자




《‘화물 과적 점검만 제대로 했더라면….’

‘비상버튼만 눌렀더라면….’

‘제때 탈출 지시를 했더라면….’

‘해경, 배에 직접 들어가 구조했더라면….’

302명의 사망·실종 참사를 낸 세월호 침몰 사고를 보면서 끊임없이 머리를 맴도는 아쉬움이다. 대부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태도나 자세만 바꿔도 되고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되는 일이다. 사고 때 이런 게 이뤄지지 않은 것은 평상시 구조구난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설령 갖췄다 할지라도 제대로 실행할 수 있도록 교육 및 훈련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론 역시 이런 비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대형사고 때마다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사후에 제대로 고쳐졌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이에 동아일보는 ‘대한민국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의 총체적인 재난관리 시스템을 집중 점검하고자 한다. 사고 순간은 물론이고 평상시 누가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꼼꼼하게 파헤쳐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안전 대한민국 이렇게 만들자’는 제언을 위한 첫 번째 시리즈다. 앞으로도 동아일보는 적절한 시간 간격을 두고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안전’이 확보되는 그날까지 지속적으로 점검할 예정이다. 》

승무원 12명 중 거동이 가능한 사람은 5명뿐이었다. 지난해 7월 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공항. 아시아나항공기가 착륙 도중 활주로와 충돌해 꼬리가 떨어져나가는 순간 승무원 5명이 부상당했다. 황급히 작동시킨 탈출용 슬라이드는 일부가 안에서 펴져버렸다. 승무원 2명이 끼어 옴짝달싹 못했다.

다치거나 몸이 끼인 7명을 제외하고 남은 승무원 5명의 손에 승객 291명의 목숨이 달린 상황. 설상가상으로 비상구는 8개 중 3개만 열렸다. 뒤편에서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기체 화재가 폭발로 이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90초. 이 시간이 탈출과 생존에 필요한 최소시간, 즉 골든타임이다. 승무원들이 훈련해봤던 최악의 상황은 300명을 비상구 4개로 탈출시키는 것이었다.

“순간 머리가 명료해지면서 뭘 해야 할지 보이더라고요. 훈련을 매년 해서 그런지 그냥 몸이 막….”(이윤혜 선임 승무원)

승무원들은 승객들을 전부 대피시킨 뒤 살아서 나왔다. 그 후 1, 2분 만에 기체는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사망자는 3명. 2명은 착륙 당시 충격으로, 1명은 출동한 소방차에 치여 숨졌다. 이 사건은 골든타임 ‘90초’가 완수된 항공기 사고로 기록됐다.

사고는 대개 예상을 뛰어넘는 최악의 형태로 일어난다. 사고 때마다 우리 안전 담당자들이 늘어놓는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 변명이다. 세월호 참사는 구조당국의 무능한 초동대응 실태를 여실히 드러낸 사례다. 첫 침몰 신고가 들어온 16일 오전 8시 52분부터 배가 완전히 뒤집힌 10시 31분까지 총 99분. 아시아나항공기 사고 때와 비교해 ‘골든타임’이 65배나 많이 주어졌지만 302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신고를 접수한 해경은 신고자인 단원고 학생에게 위도 경도 등을 묻다 4분을 허비했다. 신고 내용이 사고 해역을 담당하는 진도 해상관제센터(VTS)까지 전달되는 데에도 15분이 걸렸다. 진도 VTS는 레이더 관측 업무를 소홀히 해 세월호가 100도 이상 급선회했음에도 이상 징후를 알아채지 못했다. 신고 후 약 40분 만에 헬기와 경비정이 도착했을 땐 배가 기울 대로 기울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선내 수색 구조를 하도록 특수훈련을 받은 대원은 현장에 없었다. 최신예 해군 구조함 ‘통영함’(1600억 원) 등 정부가 천문학적 예산을 들인 해상 구조 인프라도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단원고 학생 등 300여 명이 갇힌 채 배가 뒤집히는 광경을 구조대는 속수무책으로 바라봤다.

안이한 초동대응으로 인명피해를 ‘극대화’하는 패턴은 정부가 수십 년째 고치지 못하고 있는 고질병이다. 유치원생 19명을 포함해 27명이 숨진 1999년 경기 화성시 씨랜드 화재 때 소방차가 도착한 건 신고 1시간 13분 만이었다. 화재 사고 골든타임은 단 5분. 당시 씨랜드 측 화재 신고를 받은 경찰은 40분간 사태 파악을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소방차 도착에도 20분 넘게 걸렸다. 씨랜드 진입로는 비포장 일방통행로였고 주민들이 사유지를 주장하며 쇠말뚝을 박아놓았는데 당국은 이를 방치해왔다. 사건 후 15년, 소방차 5분 내 도착 비율은 여전히 66%에 불과하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참사 때 상황실 근무자들은 모니터를 보지 않아 화재 경보가 뜬 지 3분이 지나도록 멍하니 있었다. 불이 난 열차가 역에 방치돼 있던 사이 맞은편에서 다른 열차가 들어와 그쪽까지 불이 옮겨 붙었다. 두 열차에서 192명이 숨졌다. 2012년 경북 구미 산업단지 불산 누출사고 때도 소방당국은 불산의 맹독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단순 가스누출로 판단해 피해를 키웠다. 구조요원들이 초기 2시간 반가량 무방비로 방재작업을 했고 위험지역(반경 3km) 주민 대피도 사고 발생 5시간 만에 이뤄져 불산 오염 등 2차 피해가 생겼다.

김근영 한국방재학회 이사는 “초동대응은 정확한 정보 수집 후 신속히 상황 판단을 해야 하는 고도의 작업인데 대부분 하위직 근무자가 담당한다”며 “매뉴얼은 부실하고 훈련도 형식적이어서 최일선 담당자들의 상황 판단력과 자신감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안전행정부 의뢰로 국내 재난관리시스템을 연구한 한국재난안전기술원은 보고서에서 “우리 재난관리 체계는 피해 예방보다 재해 발생 이후 복구 및 지원의 개념이 강했다”고 밝히며 초동대응 능력 향상을 핵심 과제로 꼽았다. 세월호 참사는 정부가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받아보고도 별 대책을 세우지 않는 사이 벌어진 일이다.

신광영 neo@donga.com·주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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