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영문학
사실 ‘세월호’라는 좀 불길한 이름의 배의 정체와 우리나라 해운업계의 실상을 알았더라면 어떤 부모도 자식을 그 배에 타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해운 마피아’ 관계자를 제외하고는 그 운항의 얽히고설킨 검은 내막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학생들을 ‘지켜 줄’ 방법은 없었다.
사람이 살면서 당하는 재난 중에서 천재지변보다 인재는 훨씬 더 큰 상처와 후유증을 남긴다. 천재지변은 ‘운명’이라고 체념할 수 있지만 인재는 원망과 증오, 안타까움, 후회 등 복합적인 감정의 후유증을 길게 남긴다. 그래서 인재의 희생자, 생존자는 각별한 보살핌과 치유가 필요하다. 이는 또 조용히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혼란한 상황에서 언론은 유언비어를 걸러내야 하는데 종합편성채널 MBN은 18일 자칭 민간 잠수부라는 홍가혜 씨(26·여)가 “배 안에서 생존자의 신호를 들었다고 해서 구조하려는데 해경의 저지로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인터뷰를 내보내 조난자 가족의 속을 휘저어 놓고 국가에 대한 국민 불신을 조장했다. JTBC는 세월호에서 생존한 단원고 여학생에게 “친구의 사망사실을 알고 있는가”라고 물어서 여학생의 가슴에 못을 박았고, 최근에는 20시간 연속 구조 활동을 할 수 있는 다이빙벨의 투입을 해경이 막고 있다는 이종인 씨(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의 일방적인 주장을 방영해서 또 한번 국민의 불만을 들끓게 했다. 이럴 때마다 국민은 언론의 조종에 분노하고 우는 꼭두각시가 된다.
근접 촬영을 자제하고 자극적 장면을 보도하지 않으며, 유언비어의 확산을 방지해야 하고, 검증되지 않은 정보는 보도하지 않고, 생존자와 피해자의 신상공개를 자제하며 그들의 심리적, 정신적 고통을 감소하는 데 주력하라는 재난보도 규칙은 완전히 무시되었다. 상당수의 한국 언론이, 안전수칙을 깡그리 무시한 선박회사들과 닮았다면 너무 뼈아픈 말일까.
그 비참한 심정의 부모들이 슬픔과 분노를 극복하고 다른 자녀들을 위해서, 그리고 먼저 간 자녀들을 편히 잠들게 하기 위해 정상적인 삶, 웃음이 있는 삶을 다시 찾도록 우리 모두 조용히 성원해야 한다. 그리고 엉겁결에 ‘생존자’가 된 학생들이 자책과 분노에 압도당하지 않고 각자 자신의 생의 꽃을 피워 먼저 간 친구들을 위로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지속적으로 그들을 돌보아야 한다. 이번 사고의 생존자는 누구의 죽음의 대가로 생존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번 사고의 원인인 온 국민의 안전 불감증을 수술해서 철저히 도려내고 우리 관료사회와 민간업계의 얽히고설킨 비리 유착 관계를 완전히 혁파해 망자들에게 사죄하고 산자를 살려야 한다. 언론이 그 파수꾼이 되어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