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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소중함 새삼 깨달아” 귀가 서두르고… 꼭 안아주고

입력 | 2014-04-28 03:00:00

세월호 영향 일상의 가치 재발견




#1. 금융사 팀장인 강인자 씨(49·여)는 26일 집에 들어온 아들을 자기도 모르게 꼭 안았다. 취업이 늦어진 강 씨의 아들(26)은 약 2주간 지방에서 직장을 구하러 다니다 돌아온 참이었다. 강 씨는 아들에게 “엄마는 언제나 네가 먼저다. 취업 안 돼도 괜찮으니 건강하게만 있어 달라”며 마음을 전했다.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고백에 아들도 “엄마 사랑해요”라고 답했다. 강 씨는 “같은 부서에 세월호 침몰 사고로 조카를 잃은 동료가 있어서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자식의 존재만으로도 마냥 고마워서 꼭 그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2. 인천에 사는 이병철 씨(58)는 요즘 세월호 침몰 참사 뉴스를 지켜보며 자주 외아들에게 전화를 건다. 아들(31)은 몇 년 전 취직해 서울에서 혼자 자취 중이다. 이 씨는 “아들이 2002년 대학에 입학한 뒤로 쭉 집을 떠나 혼자 살았다”며 “일이 바빠 좀처럼 통화를 잘 못하고 지냈는데 이번 사건이 터지고 나서 내가 전화를 자주 하고 문자도 보낸다”고 말했다. 이 씨는 “가족이 우리 부부와 아들, 세 명뿐인데 새삼스레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됐다”며 “앞으로 좀 더 자주 얼굴도 보고 밥도 먹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 국민의 의식까지 바꿔가고 있다. 바쁜 일상과 학업에 쫓겨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데 인색했던 부모와 자녀 모두 가족의 소중함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감정 표현이 서툰 부모들도 아이들을 자주 껴안고 ‘사랑한다’는 문자를 수시로 보낸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가 가족관계를 공고히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16일 세월호 사고 후 자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했다는 부모들의 고백이 이어지고 있다. 대기업 이모 부장(49)은 “얼마 전 회식을 하다 말고 아들에게 전화해 ‘공부 못해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자라 달라’고 했다. 공부 못한다고 구박하기만 했던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고 말했다. 학부모 10명을 인터뷰했더니 모두 세월호 사고 이후 자녀와 가족의 안전에 관심이 늘었고, 자녀에게 ‘애정 표현’을 해봤다고 답했다.

자녀들도 부모의 높아진 관심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안산에 사는 윤소현 양(16)은 “부모님께서 세월호 사고 이후 ‘항상 조심하고, 건강해라’며 말을 많이 거시는데 평소 표현을 잘하던 분들이 아니라 더 뭉클하다. 가족들한테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기업에서는 단체행사나 야유회를 취소하고 직원들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분위기다. 대기업 노사문화를 담당하는 이모 과장(38)은 “세월호 사고 이후 회사에서는 직원들이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회사 단위의 행사나 회식, 주말 근무 등을 자제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인들은 감정 표현이 약하다고 알려져 있다. 2012년 미국 갤럽이 전 세계 151개국을 대상으로 감정지수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21번째로 감정이 무딘 국가로 나타났다. 이웃인 중국(60위), 일본(80위)보다도 감정 교류가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오윤자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한국인들은 가족같이 가까운 관계일수록 애정, 사랑과 같은 긍정적 감정을 교류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가족의 가치에 대한 사회의 의식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오 교수는 “세월호 사고를 거치면서 가족이 소중한 존재라는 의식이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았고 그것이 의사소통 과정에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개인을 넘어 사회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교육과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진성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깨달은 만큼 가족을 비롯해 우리가 중시해야 하는 가치관을 다시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건혁 gun@donga.com·이은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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