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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약초 캐는 사람

입력 | 2014-04-28 03:00:00


약초 캐는 사람
―이동훈(1970∼ )

언젠가 일 없는 봄이 오면
약초 캐는 산사람을 따라가려 해.
짐승이 다니는 길로만 가는 그를
안간힘으로 따라붙으면
물가 너럭바위 어디쯤 쉬어가겠지.
버섯이나 풀뿌리 얼마큼을 섞어
근기 있는 라면으로 배를 불리면
마른 노래 한 소절이라도 읊게 될 것만 같아.
볕에 그을린 몸이 단단해지고
비탈을 평지처럼 걷게 되면
약초 이름도 더러 외게 되겠지.
외운 만큼 곁을 주는 건
산 아래와 다르지 않을 거고.
장마 지는 날엔
화전민 움막에 나란히 앉아
그리운 것들을 빗물로 내려 보내고
산안개 따라 도리바리 울음이라도 들릴라치면
경건한 묵상에 빠지기도 하겠지.
이따금 장터에 내려서서
도매로 물건을 넘길 때
축농증 앓는 둘째를 위해
효험 있다는 약초를 따로 챙길 것이고
어디론가 송금이 끝난 그도
술 한 잔 받아줄 것이기에
한나절, 구름처럼 둥둥 떠 있게 될 거야.
언젠가 일 놓는 봄이 오면
그 누군가를 위해
약초 캐는 사람이고 싶어.


이 시가 실린 이동훈 시집 ‘엉덩이에 대한 명상’의 시편에서는 여린 마음과 정 깊고 선한 기운이 담뿍 배어난다. 문학평론가 이성혁은 해설을 ‘어떤 시는 시를 쓴 사람의 인간됨을 느끼게 해준다’라고 시작한다. ‘이 시인이 참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일 것이라는 느낌이 왔다’는 것이다. 사람의 느낌이라는 게 참 비슷하구나!

아직 일할 나이로 직장인인 화자가 봄날에 펼쳐보는 낭만적인 꿈이다. 일장춘몽이 아니라 건강하고 싱그러운 장래의 꿈. ‘언젠가 일 없는 봄이 오면’ ‘언젠가 일 놓는 봄이 오면’, 즉 은퇴한 뒤에는 이렇게 살아보리라. ‘장마 지는 날엔/화전민 움막에 나란히 앉아/그리운 것들을 빗물로 내려 보내고/산안개 따라 도리바리 울음이라도 들릴라치면/경건한 묵상에 빠지기도 하겠지.’ 도리바리는 호랑이를 이르는 심마니(산삼 캐는 사람) 은어라고 한다. 호랑이만 울까, 고라니도 울고 산새도 울고 뱀도 울겠지.

약초 캐는 산사람의 건강하고 떳떳하고 단순한 삶이 그 험함과 고됨과 외로움까지 살갑게,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독자도 한번쯤 따라다니고 싶다. 노년을 ‘그 누군가를 위해 약초 캐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니, 화자의 각박하지 않은 현재 삶이 짐작된다. 약초 캐는 산사람을 따라다닐 근력을 착실히 키우시길.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