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안전 대한민국’ 이렇게 만들자] 재난매뉴얼 무용지물 안되려면
“위치, 경·위도(경도와 위도) 말해주세요.”(목포 해양경찰)
“위치는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실제로는 고교생이 알 수도 없는 경·위도를 묻는 데 시간을 허비했다. 최 군의 신고는 최초의 신고였다. 그러나 해경은 신고가 들어온 뒤 4분이 지나서야 경비정을 출동시켰다. 1초가 아까운 긴박한 상황에서 4분을 허비한 것이다.
○ 매뉴얼 있어도 작동 안 되면 무용지물
세월호 침몰 사고로 정부의 재난 매뉴얼은 무용지물(無用之物)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있어 봐야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정부도 위기관리 매뉴얼에 대한 점검에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대통령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매뉴얼 작동 여부를 점검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마련해놓고 있는 매뉴얼은 그 수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정부는 이미 3단계로 구분된 3500여 개의 재난 매뉴얼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현장에서 매뉴얼을 제대로 숙지하고 활용할 수 있는지다. 목포해경만 해도 세월호 침몰사고의 첫 신고를 받고 매뉴얼 지침대로 행동하지 못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상황에 당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서종진 전 재난안전본부 상황실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고도로 훈련되고 경험이 축적된 전문가가 아니면 누구나 재난상황에 직면할 때 당황하게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재난 사고 발생 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조치를 취해야 하는 행동 매뉴얼이라고 입을 모았다. 현장에서 발생 가능한 상황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매뉴얼에 담을 수는 없다. 결국 실무자들이 매뉴얼을 토대로 상황에 맞는 응용 능력을 발휘하느냐가 관건이란 것이다. 안전행정부의 재난 관련 담당자는 “개략적인 원칙을 정하고 나머지는 실무자들이 각 상황에 ‘운용의 묘’를 살려 대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 매뉴얼 담당자의 숙련화, 전문화 절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매뉴얼을 점검해보는 훈련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특히 재난 관련 유관기관이 손발을 맞추는 협조훈련은 핵심으로 손꼽힌다. 해경은 해경대로, 해운항만청은 해운항만청대로, 소방방재청은 소방방재청대로 자기들만의 행동 매뉴얼이 있기 때문에 각자의 매뉴얼대로만 움직일 경우 충돌을 빚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백민호 강원대 재난관리학과 교수는 “일반 공무원으로서는 매뉴얼을 제대로 이해하고 응용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분야도 있다”며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노력도 동시에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 현장 매뉴얼 관리도 중요
그러나 세월호가 침몰할 때 이런 매뉴얼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는 “그쪽 상황을 모르니 선장이 직접 판단하라”고 지시했고, 세월호의 항해사는 “탈출하면 구조할 수 있느냐”란 질문만 거듭했다. 판단의 책임을 서로 떠넘긴 것이다.
정운채 전 해군해난구조대장은 통화에서 “관(官)도, 민(民)도 매뉴얼을 숙지하고 매뉴얼을 활용했더라면 대형 인명 참사는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