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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 애기!” 다섯살 지연이 먼저 구조선에 올린 승객들

입력 | 2014-04-30 03:00:00

[세월호 참사/구조영상 공개]
어업지도선 박승기 항해사 촬영… 해경보트-어선 등 5척 구조작업
펜스 붙잡고 간신히 버티는 승객들, 객실 가리키며 “사람 있다” 신호
구조된 학생, 친구이름 부르며 오열




10:19 어선 붙잡은 탈출 승객들 세월호에서 간신히 탈출한 탑승객 10여 명이 어선 ‘피시헌터호’에 매달려 있다. 뒤쪽으로 완전히 잠겨버린 세월호 우현 난간이 보인다. 조금만 늦었다면 이들마저 목숨을 잃을 수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다.

“너무 무서워!!” “강○○!! 강○○!!”

16일 오전 10시 15분경 90도 가까이 기울어진 세월호 4층 선미에선 단원고 한 여학생이 애타게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다른 학생들도 울음을 터뜨렸다. 이미 절반 정도 물이 들어찬 선미 출입구에서 학생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내밀었다. 전남 어업지도선 고속단정 2척과 어선 1척, 해경 구명보트 1척이 이들을 연거푸 끌어올렸다. 간신히 구출된 학생 10여 명은 침몰해 가는 배를 향해 친구들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10:20 여자 아이부터… 탈출에 성공한 승객들이 해경 123정으로 옮겨 타고 있다. 오빠가 구명조끼를 벗어준 덕에 탈출할 수 있었던 권지연 양(점선)도 이때 구조됐다. 권 양의 모친은 숨진 채 발견됐으며 부친과 오빠는 실종 상태다.

세월호 침몰 당시의 구조 장면을 생생히 담은 동영상이 29일 또 공개됐다. 전남도 어업지도선 201호 항해사 박승기 씨(44)가 촬영한 21분 36초짜리 동영상으로 사고가 난 16일 오전 10시 4분부터 25분까지의 구조 장면을 편집 없이 담은 것이다. 박 씨는 자신의 헬멧에 부착된 캠코더의 자동촬영기능으로 이를 찍었다.

10:21 마지막 생존자 수색 침몰한 세월호 근처에서 구명조끼에 의지해 바다에 떠 있던 남성을 어업지도원이 구조하기 위해 접근하고 있다. 이 남성을 구조하고 다시 수색을 재개했으나 다른 생존자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전남도 제공 동영상 캡처

박 씨는 16일 오전 9시 20분 전남 해남군 땅끝마을 인근 마로해역에서 불법 조업 단속을 하던 중 사고 소식을 통보받았다. 박 씨 등 5명은 고속단정 2척으로 40km 거리를 44분 만에 주파해 사고 해역에 도착했다. 당시 주변에는 100t급 해경 경비정인 123정을 비롯해 10여 척의 배가 있었지만 직접 구조작전에 참여한 선박은 해경 구명보트 1척과 어업지도선 산하 고속단정 2척, 어선 ‘피시헌터’와 ‘태선’ 2척 등 5척뿐이었다. 큰 배들은 세월호가 갑자기 전복되면 침몰할 위험이 있어 접근하지 못했다.

박 씨가 탄 고속단정은 오전 10시 8분경 80도 정도 기운 세월호 선미 갑판에서 중년 남성 1명을 구한 뒤 선미 출입구로 다가가 7명을 더 태웠다. 승객들은 구명조끼를 입은 채 계단, 펜스를 붙잡고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승객 1명은 객실을 손으로 가리키며 “내부에 사람들이 있다”며 애타는 수신호를 보냈다. 검은색 잠수복을 입은 해경 대원 1명은 승객이 물에 빠지지 않게 지키고 있었다.

박 씨는 오전 10시 18분 세월호 중간에 배를 띄우고 좌우를 둘러봤지만 더이상 선체를 빠져나오는 승객이 없었다. 세월호는 120도가량 기울어 점점 빠르게 가라앉고 있었다. 그 순간 우현 4층 중간 복도에서 학생과 어른 등 승객 30여 명이 쏟아져 나왔다. 박 씨의 고속단정과 해경 구명보트가 황급히 달려가 물에 빠진 승객들을 건져내기 시작했다.

승객들은 상체까지 차가운 바닷물에 잠긴 위급한 상황에서도 “애기!”를 연달아 외치며 권지연 양(5)을 두 손으로 잇따라 옮겼다. 권 양은 귀농을 위해 제주도를 가던 아버지 권재근 씨(52)와 베트남 출신 어머니 한윤지 씨(29), 오빠 권혁규 군(6)과 함께 세월호를 탔다. 권 양은 오빠가 벗어준 구명조끼를 입고 구조됐다. 권 양의 어머니는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고 아버지와 오빠는 실종 상태다.

박 씨는 오전 10시 21분 승객을 경비정에 옮겨 태우고 다시 뱃머리를 돌렸지만 세월호는 거친 파도 속으로 침몰한 상황이었다. 동료들과 함께 고속단정 2척으로 50여 명을 구한 박 씨는 “앳된 아이들이 배에 물이 들어차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순간, 정말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더 많이 구조하지 못해 한스럽다”고 말했다.

목포=이형주 peneye09@donga.com·조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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