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안전 대한민국’ 이렇게 만들자]<3>정부 관리감독 왜 안되나
한 차례 연임 끝에 2008년에 이사장직에서 물러난 그는 한 해운업체의 계열사 대표로 자리를 옮겨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낙하산으로 내려갔던 공공기관에서 임기를 채우고 이어 자신이 규제하던 해운사에 재취업함으로써 공직 은퇴 후 관련 분야에서 12년간 월급을 챙긴 것이다. 그가 취업한 해운사는 세월호의 화물적재를 맡았던 업체로 최근 검찰의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관료 마피아’는 세월호 참사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에 낙하산으로 내려간 퇴직 관료들과 이들을 관리·감독하는 현직 관료들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마피아식 커넥션’을 형성해 안전규제 등 국가 체계의 근간을 갉아먹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의원은 4년, 대통령은 5년, 관료는 30년’이란 말이 있다. 정권의 손 바뀜에 적응하며 수명을 연장해가는 관료들의 무한권력을 풍자한 말이다. 관료 마피아는 이 같은 관료들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모피아(옛 재무부+마피아)’부터 ‘국피아(국토교통부)’, ‘산피아(산업통상자원부)’, ‘교피아(교육부)’까지 넓게 퍼진 관료 마피아는 분야별 권력 구조의 꼭짓점을 형성하고 있다.
관료 마피아의 생태계는 규제를 만드는 정부 부처, 규제를 실행하는 공기업이나 정부 위탁기관, 규제 대상인 민간업체를 전현직 관료들이 독점하면서 완성된다. 특히 정부와 민간업체 사이에서 정부 업무를 대행하는 공기업과 정부 위탁기관은 민간기업의 ‘갑’으로 군림하면서 낙하산으로 내려간 퇴직 관료들에게 민간 진출의 통로를 열어준다.
퇴직관료들이 방패막이가 됨에 따라 민간기업에 대한 관리감독도 허술하게 이뤄진다. 세월호 참사 역시 부실 안전점검이 원인이 됐다. 선박 안전관리를 담당하는 공공기관인 선박안전기술공단과 정부의 위탁을 받아 선박을 검사하는 한국선급 등을 해수부 마피아, 일명 ‘해피아’가 장악했고 안전관리는 뒷전으로 밀렸다.
특히 안전관리 공공기관은 대부분 직원 1000명 이하의 소규모 기관이어서 정치권과 감사원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관료 마피아의 낙하산이 집중되는 이유다.
○ 뒷전에 밀린 안전, 끊이지 않는 비리
안전관리 공공기관장이 규제 대상인 민간기업이나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익단체로 자리를 옮기는 사례도 적지 않다. 시설안전기술공단 이사장을 지낸 한 전직 관료는 건설사 회장으로 재취업했으며 건설관리공사 사장을 지낸 관료는 퇴임 후 하천 관련 건설업체들이 만든 협회의 회장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이처럼 전관예우로 끈끈하게 엮인 관료 마피아가 안전관리 기관을 장악하면서 이 기관들은 비리와 안전관리 부실로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정부 감사에서 적발된 공공기관 범죄·징계건수를 보면 전기안전공사가 167건, 교통안전공단은 71건이나 됐다. 선박안전기술공단의 한 간부는 2006년부터 선박 안전검사에서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3700만 원의 뇌물을 받아 챙기다 2012년 구속됐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부실 운항관리로 비판을 받고 있는 해운조합의 해수부 관료 출신 고위 간부는 선박사고를 일으킨 해운사의 보험금 과다 청구를 묵인하는 대가로 금품을 받은 사실이 적발돼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실 안전점검이 지속되면 대규모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안전관리 공공기관을 관료 마피아가 장악하는 관행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조원철 연세대 교수(토목환경공학)는 “안전 관련 공공기관이 관료 집단 내부의 ‘먹이사슬’에 얽혀 본업인 안전관리를 소홀히 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안전 분야만은 전문가가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