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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리포트]“재난대응 부실하면 옷벗는다” 공무원이 느끼게 해야

입력 | 2014-04-30 03:00:00

[세월호 참사/‘안전 대한민국’ 이렇게 만들자]
또 다른 癌, 관료 보신주의




“해양안전과 관련한 민감한 얘기는 지금 못해요. 이번 고비만 넘기고 봅시다.”(해양수산부 관료)

“‘골든타임’ 대응은 우리 소관이 아닙니다. 다른 데 물어보세요.”(안전행정부 관료)

정부 부처 관료들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에도 이처럼 사고 원인을 정밀 분석하고 시스템을 뜯어고치는 근본대책을 내놓는 데 주저하고 있다. 공무원들 사이에 자신의 임기만 무사히 마치려는 보신주의가 팽배해 있는 한 대형 재난이 반복되고 정부가 재난대응에 허둥대면서도 희생자가 늘어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힘들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 위기를 위기로 보지 않는 관가


지난주 동아일보 취재팀은 선박검사가 외국 시장에 개방돼 있지 않고 한국선급이라는 민간업체가 독점하고 있는 문제의 원인을 해수부 공무원에게 물었다. 세월호 부실검사 논란에 답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질문임에도 해당 공무원은 “지금은 곤란하니 몇 달 지나 여론이 잠잠해지면 얘기하자”고 말했다. 안행부, 국토교통부 등 재난과 관련된 다른 부처에도 재난 매뉴얼이나 재난대응시스템에 대한 질문에 “말하기 곤란하다”는 식의 무책임한 답변을 내놓는 공무원이 적지 않았다. 사상 초유의 참사를 겪고도 ‘조금만 버티면 될 것’이라는 안이한 인식이 관료들 사이에 퍼져 있는 것이다.

관료사회가 자신들과 코드가 맞는 민간업체하고만 일하는 관행도 위기를 초래한 원인으로 꼽힌다. 고질적인 병폐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속에서 곪다가 결국 터져버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일례로 선박검사를 외국에 개방하지 않는 것은 말 잘 듣는 국내 업체에 검사를 맡겨 업체를 정부 뜻대로 조종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일부 관료는 세월호 침몰사고에 대해 “운이 나빴다. 아무리 대책을 만들어도 재수가 없으면 같은 일이 또 일어날 수도 있다”며 자포자기한 상태다. 정부 부처들이 아무리 대책을 만들고 법과 제도를 고쳐도 대책과 제도를 실행에 옮기는 공무원들이 이런 마음가짐을 고치지 않는 한 소용이 없다. 정부가 이번 사태 수습 이후 재난대비대책을 만든다며 들썩거리겠지만 결국에는 큰 진전을 보기 힘들 것이라는 회의론이 나오기도 한다.

○ 무능함에 이기주의 겹쳐

안행부에서 재난 상황을 직접 처리하는 부서는 안전관리본부, 중앙안전상황실, 재난협력과 정도다. 이들 부서에 골든타임 매뉴얼에 대해 질문하니 개념을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한 당국자는 “올해 안에 소방로를 막고 있는 불법주차를 못하게 하거나 차가 막혔을 때 길을 터주도록 하겠다”고 했다. 인명구조에 가장 효율적인 현장 대응법을 담아야 하는 골든타임 매뉴얼을 교통문화 개선대책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공무원들의 이런 무능함 때문에 재난 시 초동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공무원들은 이번 사고 내내 ‘참담하다, 안타깝다’는 식의 수사를 동원해 국민과 고통을 함께하려는 점을 강조했지만 정작 책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는 현안과 관련해서는 ‘내 일이 아니다’라는 태도를 보였다.

국가 재난대처의 총책임자 격인 김장수 대통령국가안보실장은 23일 “국가안보실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발언했다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정부의 위기관리 종합체계를 보면 국가안보실은 위기 시 대통령을 보좌해 중앙긴급구조통제단으로부터 상황을 보고 받고 재난 상황에 대처토록 돼 있지만 자신의 임무를 안보 및 정보영역으로 제한한 채 재난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으로 비쳤다. 선박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해수부는 “안전 문제는 모두 해경에 위임한 상태여서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 승진 집착하는 공무원에 경고 필요

행정전문가들은 한국의 공무원들이 출세에 매달리면서 안전 문제를 간과하는 풍토가 생겼다고 본다. 출세하려면 핵심 정책부서와 인사부서 등 요직을 두루 거쳐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당장 성과를 내기 힘든 안전 관련 부서는 기피하기 마련이다. 관료들에게 안전이 우선순위였던 적이 없다 보니 긴급한 사태가 터졌을 때 우왕좌왕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박통희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무원들이 공익을 위해 일하지 않고 승진에 집착하다 보니 안전 문제를 소홀히 다뤘다”며 “재난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시민단체가 공공 부문의 재난 대응 실태를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국무총리실 산하에 국가안전처를 만들기로 한 것을 계기로 초기 구조에 초점을 둔 재난대응체계를 구축하되 전 부처가 안전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토록 독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강제상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는 “안전대책은 중간에 멈추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며 “안전 책임자를 부처별로 정해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인식을 확고하게 심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글 싣는 순서>

<1> 골든타임 다시는 놓치지 말자
<2> ‘재난 컨트롤타워’가 없다
<3> 정부 관리 감독 왜 안 되나
<4> 안전은 최선의 투자다
<5> 피해자 가족 평생 돌보자
<6> ‘집단 위험 망각증’ 해부
<7> 두 번 실패는 안 된다

세종=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홍수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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