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호 전문기자
국민 수백 명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대형 참사가 벌어졌지만 정부의 재난관리 시스템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허술하고 부족했다. 이런 수준의 재난방지 인프라를 방치했다가는 평시는 물론이고 전시와 같은 국가 위기가 발생했을 때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상상조차 하기 싫다. 초유의 위기에서 나와 내 가족을 보호할 수 없는 무능한 정부를 위해 어느 국민이 세금을 내고 신뢰를 보낼 수 있을까.
이번 사태는 안보 최일선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군에도 뼈아픈 교훈을 주고 있다. 전·평시를 불문하고 대규모 해상재난에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군이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를 짚고 또 짚어봐야 한다는 얘기다.
더욱이 평택함은 건조한 지 40년이 지난 노후 함정이다. 1972년 12월에 취역해 1996년 3월 퇴역한 미국 해군의 구조함을 한국군이 도입해 1997년 4월 재취역시켜 운용해왔다. 또 다른 구조함인 광양함도 평택함과 같은 시기에 미 해군의 퇴역 구조함을 도입해 재취역시킨 함정이다. 그나마 현재 광양함은 6개월에 걸친 장기 수리 중이어서 세월호 참사 현장에 투입되지 못했다.
더욱이 신형 수상함구조함인 통영함은 진수한 지 19개월이 지나도록 선체와 주요 장비의 성능 미달로 실전 배치가 계속 연기됐다. 1600억 원을 투입한 구조함이 ‘무용지물’이라는 비판이 쏟아질 만하다. 군 당국은 실전 배치가 안 된 함정을 투입할 경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절체절명의 해상재난 구조에 필요한 전력을 제때 전력화하지 못했다는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어렵다. 군 일각에선 이번 사태로 구축함과 상륙함, 고속정 등 160여 척의 수상함정을 갖춘 해군이 낡을 대로 낡은 두 척의 구조함에 구난 체계를 의존하고 있음을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비무환(有備無患)과는 거리가 먼 대비태세라는 여론의 따가운 질책을 군 수뇌부는 곱씹어봐야 한다.
무인탐지장비(ROV)의 지리멸렬한 실태도 충격적이다. 잠수요원이 접근하기 힘든 침몰 선박의 탐색작업에 활용되는 이 장비를 군은 세 대나 보유했지만 모두 작동불능 상태였다. 전부 고장이 나 수리 중이거나 성능이 떨어져 제 구실을 못하자 해경은 부랴부랴 미국 업체로부터 두 대를 협조받아 사고 현장에 투입했다. 평소 장비의 성능 점검과 관리 상태가 얼마나 허술하기에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군 당국은 철저히 조사해 재발 방지책을 세워야 한다.
아울러 해상에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태에 대비한 군의 구호 응급체계도 고민해야 한다. 천안함 폭침과 세월호 침몰 사건은 분초를 다투는 구조작전과 응급처치만이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뼈저린 교훈을 남겼다. 그런 맥락에서 미국과 유럽 각국이 운용 중인 병원선의 도입을 한국군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반면에 병원선이 없는 우리 해군은 유사시 일반 선박을 개조해 환자 수송선으로 활용할 계획이어서 신속한 응급조치가 힘든 상황이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보유한 150t급의 민간 병원선을 활용해 장병 치료 및 후송정찰 훈련을 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런 수준으로 평시는 물론이고 전시 대량 인명피해 사태에 제대로 대처하길 기대하긴 힘들다. 군은 세월호 사고에서 드러난 구조구난 체계의 미비점을 철저히 분석하고 보완하길 바란다. 그것은 국민과 국가의 안위가 걸린 안보를 책임지는 군 본연의 자세다.
윤상호 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