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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경 “탈북의 상처보다 남한 부적응이 더 힘들어”

입력 | 2014-04-30 03:00:00

탈북자 트라우마 치료센터 ‘새삶’ 만든 이혜경씨




“탈북자는 탈북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한국 정착 과정에서 더 큰 트라우마를 겪습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인다고 부적응의 원인을 개인 잘못으로 돌리고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탈북자들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단체가 처음 설립됐다. 23일 ‘새삶’을 발족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이혜경(49·여·사진) 씨도 탈북자다. 이 단체의 발기인으로 최금숙 여성정책연구원장 등 전문가와 탈북자 동료 10명이 참여했다.

단체 설립을 결심한 데에는 2002년 한국에 온 그가 북에 남겨진 딸을 데리러 재입북했다가 겪었던 6개월간의 수용소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이 씨는 “탈북과정에서 겪은 끔찍한 경험, 북한에 남겨진 가족이 나 때문에 죽는데도 나는 한국에서 호의호식한다는 죄의식이 탈북자들을 옥죄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탈북자들이 학업을 중도포기하고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하는 것도 트라우마 영향이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 씨는 북한에서 약사로 근무했고 한국에서 삼육대 약대를 나왔다. 북한대학원대에서 ‘북한 의료체계 파행화’를 주제로 석사 학위를, ‘북한의 보건일꾼 양성정책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이 씨의 지도교수였다.

‘새삶’은 앞으로 의료기관과 연계해 탈북자의 심리·육체 치료를 하는 한편 한국 역사와 문화 등 사회 적응을 위한 교육도 실시할 예정이다. 또 합창단 활동 등을 통해 재활과 심리치료를 병행하는 방법도 구상 중이다.

이 씨는 “한국에 잘 정착한 탈북자가 자꾸 나와야 하고 그런 소식이 계속 북한에 알려져야 한다. 그래야 북한 주민도 희망을 갖지 않겠느냐”며 “‘새삶’ 활동을 통해 내가 학비 걱정 없이 박사까지 할 수 있게 해준 한국사회에 보답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2012년 통일부 국정감사에 따르면 탈북자 정착시설인 하나원에서 지난 10년간 정신과 진료는 내과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4만9627건을 차지했다. 전체 진료의 22%에 달한다. 또 국내 정착 탈북자의 0.09%가 자살로 생을 마감해 그 비율이 전체 국민 자살률(0.03%)의 3배에 달한다. 그만큼 ‘마음이 아픈’ 탈북자가 많다. 한국에 적응하지 못해 북한으로 되돌아가는 재입북자도 조금씩 나오고 있다.

이 씨는 “그런데도 정부 정책이 ‘진학률’과 ‘취업률’이라는 수치를 ‘잘된 정착’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어 탈북자의 현실을 제대로 다 반영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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