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수분야구-형님 리더십-자진사퇴… 두 사람은 어찌 그리도 비슷하던지 돌아와 놀라운 NC 만든 김경문처럼 김기태도 다시 한번 새로운 감동을
김기태 LG 감독(오른쪽)은 2008 베이징 올림픽 때 타격 코치로 당시 한국 대표팀을 이끈 김경문 감독(현 NC 감독)을 보좌했다. 동아일보DB
▷김경문 감독은 프로야구 사령탑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다. 3번째 시즌 초반 자리에서 물러난 신예 김기태 감독과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 그렇지만 둘은 공통점이 많다. 두 사람을 상징하는 말은 강한 카리스마다. ‘형님 리더십’으로 불린 것도 똑같다. 2군 선수들을 중요시하며 ‘화수분 야구’를 지향한 점도 비슷하다. 둘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감독(김경문)과 타격 코치(김기태)로 한국 야구의 전승 우승 신화를 합작했다. 두 사람 모두 감독직에서 물러난 뒤엔 가족이 머물고 있는 미국으로 떠났다.
▷김경문 감독에게는 독특한 어법이 있다. “감독은 말이지∼” 또는 “남자가 돼서∼”라는 표현을 서두에 자주 쓴다. 김기태 감독은 “어떤 상황에서도 ‘얼굴’ 떨어지는 일은 하지 맙시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어법에서 드러나듯 둘은 남 탓을 하지 않는 성격이다. 성적이 안 좋을 때 대부분의 팀은 코칭스태프 교체라는 처방을 자주 쓴다.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코치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남을 탓하기보다는 자신을 탓했다. 그 최종 선택은 자진 사퇴였다. 야구판에서 자진 사퇴는 대개 경질의 다른 표현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진짜’ 자진 사퇴를 했다. 아니었다면 구단이 며칠을 따라 다녀가며 만류할 일도 없었다.
김기태 LG 감독이 감독실에 액자로 만들어 걸어놓은 본보 2011년 11월 22일자 A25면 기사. 김 감독은 인터뷰에서 선수들에게 “생존을 위한 철저함”을 강조했다.
▷김 감독은 올 시즌 목표를 더 높게 봤다. 에이스 리즈가 부상으로 빠지긴 했지만 지난해 전력이 고스란히 유지됐고 새 외국인 선수 등 플러스 전력도 기대할 만했다. 그런데 막상 시즌이 시작하자 팀은 최하위권에 처졌다. 될 듯 될 듯 미끄러지는 모습을 보며 그는 확실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해보고자 했다. 바로 자진 사퇴였다. 2011년 말 처음 감독직을 맡고 주축 선수들이 우수수 빠져나갔을 때 기자는 김 감독과 인터뷰를 한 뒤 ‘떠난 선수 빈자리, 남은 선수들엔 기회’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김 감독은 그 기사를 액자로 만들어 감독실 벽에 붙여 놨다. 이제 그의 빈자리가 남은 선수들에게 자극이 되길 바라며 그는 유니폼을 벗었다.
▷3년 전 팀을 위해 자신을 내던졌던 김경문 감독은 그해 가을 제9구단 NC 사령탑으로 현장에 복귀했다. 잠시마나 야구판을 떠나 세상을 돌아보면서 한층 넓고 깊어진 감독이 돼 돌아왔다. 1군 진입 첫해인 지난해 7위를 차지했던 NC는 올 시즌엔 초반 돌풍을 일으키며 30일 경기 전까지 2위(15승 9패)를 달리고 있다. 그리 길지 않은 감독 생활 동안 특유의 선 굵은 지도력을 선보인 김기태 감독 역시 언젠가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올 것이다.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후 새로운 감동을 전할 수 있는 감독으로 되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